검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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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신문
  • 승인 2007.07.1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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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
지난해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출신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출간 되었다. 1990년 출간 되었던 이 작품은 터키에서만 7만 부가 팔려나가, 전 세계에 오르한 파묵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 문화와 정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랑과 죽음, 행복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집필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실종된 아내를 찾아다니는 변호사 갈립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를 분실하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결국 홀로 남아있는 고독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변호사 갈립(터키어로 ‘승리’라는 뜻)의 아내 뤼야(터키어로 ‘꿈’이라는 뜻)가 짧은 메모만 남긴 채 사라진다. 유명한 칼럼 작가인 그녀의 의붓오빠 제랄 역시 종적을 감춘다. 갈립은 뤼야가 제랄과 함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사랑이자 친구인 그녀와, 질투와 숭배의 대상인 그를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 둘을 추적하면서 찾아가는 모든 거리, 집, 식당에서 자신의 과거와 기억을 다시 발견한다.
 
또한 이스탄불 곳곳에 숨겨진 신화, 전설, 이야기뿐 아니라,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 새로이 유입된 서양 문화가 뒤섞인 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갈립은 제랄의 칼럼을 읽으면 그 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가, 제랄의 삶을 산다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거라 믿게 되고, 결국은 자신이 제랄의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뤼야와 갈립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평생 제랄이 되기를 원했고, 제랄이 된다면 뤼야가 드디어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르한 파묵은 작품을 통해 이스탄불이 얼마나 흥미로운 도시인지, 얼마나 슬픈 도시인지를 이야기한다. 갈립의 자아에 대한 배신과 혼동은 그리고 제랄에 대한 표절은 이스탄불의 현실을 나타내는듯 하다.

이스탄불은 지형적으로는 일부는 아시아 대륙에, 일부는 유럽 대륙에 걸쳐져 있다. 당연히 문화적, 종교적으로 두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이 점령하여 여러 제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유입된 수많은 문명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새로이 들어온 서구 문명, 특히 미국 문화는 이스탄불의 자아를 뒤 흔들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넘나들면서 이 도시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오르한 파묵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나아가 원래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 결국 남는 것이 없고 홀로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 오르한 파묵이 말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냉정해서 공포감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읽는 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 좋은 작품의 요건이 된다면 『검은 집』은 그 여건을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해 묘사한 작가의 시선들은 그 곳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독자들은 그의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낼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비단 이스탄불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아의 혼동 속에서 복잡하게 현대 사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독자들, 과연 이 책을 통해 어떤 해답을 얻어낼 것인가는 작가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이자 가슴에 남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검은 책
오르한 파묵 지음 / 이난아 옮김 / 민음사 펴냄 / 각권 330쪽 내외 / 각권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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