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주자학
퇴계 이황과 주자학
  • 황인술
  • 승인 2011.07.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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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독서신문] Ⅰ. 생각해보기
 
1. 이황 (李滉, 1501~1570)

조선 중기 학자·문신으로 핵심사상은 이기호발설이다. 영남학파를 이루었고, 이이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와 대립, 동서 당쟁과도 관련되었다. 경상북도 예안 출생. 12세 때 숙부 이우에게서 학문을 배우다가 1523년(중종 18) 성균관에 입학, 1528년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부정자(副正子)·박사(博士)·호조좌랑(戶曹佐郞)과 1539년 수찬(修撰)·정언(正言)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를 겸직하였다.

1542년 검상(檢詳)으로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사인(舍人)으로 문학(文學)·교감(校勘) 등을 겸직,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이기에 의해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고 응교(應敎) 등의 벼슬을 거쳐 1552년 대사성에 재임, 1554년 형조·병조의 참의에 이어 1556년 부제학, 2년 후 공조참판이 되었다. 15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 1568년(선조 1) 우찬성을 거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내고 이듬해 고향에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2. 사상

이언적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주자의 주장을 따라 우주의 현상을 이·기 이원(二元)으로 설명, 이와 기는 서로 다르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관계에 있어서, 이는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법칙을 의미하고 기는 형질을 갖춘 형이하적 존재로 이의 법칙을 따라 구상화(具象化)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기이원론을 주장하면서도 이를 보다 근원적으로 보아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시켰다. 사상의 핵심은 이기호발설이다. 이기호발설은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은 사단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乘]는 것은 칠정(情)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기대승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사칠분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다. 또한 인간의 존재와 본질을 행동보다는 이념적인 면에서 살펴보려 했으며, 인간의 순수이성은 절대선으로 여기에 따른 것을 최고의 덕으로 보았다.

그의 학풍은 문하생인 유성룡·김성일·정구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대립, 동서 당쟁은 이 두 학파의 대립과도 관련되었으며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퇴계는 별세하기 나흘 전인 1570년 음력 12월 4일, 병세가 위독해지자 조카 영을 불러서 4언 24구의 자명(自銘)으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일생을 96글자의 한시로 압축한 것이다. 퇴계가 특별히 스스로 묘비명을 쓴 것은 제자나 다른 사람이 쓸 경우엔 실상을 지나치게 미화하여 장황하게 쓸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묘비명은 퇴계가 어떤 사람이며, 평생 놓지 않았던 학문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저서에 『성학십도』가 있고 작품으로는 시조에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글씨에 「퇴계필적(退溪筆迹)」이 있다.

3. 이와 기

리는 결, 맥락에서 파생한 말로 조리, 법칙, 원리, 원칙, 본질, 생명의 원리,  제도, 규범, 형식 등을 의미하는 광범한 의미를 지닌 개념이며 기는 공기 등의 기체, 숨, 우주만물에 대한 물질, 정신적 구성요소나 현상, 생명현상, 힘, 에너지, 욕구, 욕망 등을 의미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4. 영남학파(嶺南學派)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사유체계가 깊어지게 되면서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파를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학파와 중기 조식(曺植)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명학파, 이황(李滉)을 중심으로 형성된 퇴계학파, 장현광(張顯光)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헌학파가 있다.

영남학파 학풍의 특징은 이론중심이 아니라 실천중심에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조식은 ‘경의(敬義)’를 몸으로 실천하여 학문과 덕행을 쌓았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절제된 가치관으로, 당시 사회현실과 정치적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단계적이고 실천적인 학문방법을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실천궁행(實踐躬行: 실제實際로 몸소 이행履行, personal practice.)은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경상우도의 학풍을 만들었다.

이러한 학풍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가하여 학문의 실천을 몸소 보여준 학인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시기 영남좌도에서 이황의 덕행을 우러러 그의 학문사상을 따르려는 유파가 생겨나며 이 학파를 퇴계학파라고 한다. 퇴계학파의 학자로 기대승·김성일·유성룡·이덕홍·조호맹·정경세·허목·김흥락·곽종석 등을 들 수 있다. 이 학파는 이황의 철학 사상을 이어받아 주리설(主理說)을 완성한다. 이황 철학의 기본적 성격은 이(理)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기에는 상대적 가치를 두는 존리설(尊理說)이었으며, 본래 자리에서 실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가 실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영남학파의 철학 특징이다.

5. 기호학파(畿湖學派)

조선시대 유학자 이이를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자들에 대한 총칭이다. 여기서 기호란 기호지방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충청도 일원, 동쪽은 관동지방, 남쪽은 호남지방, 북쪽은 관서지방과 접경을 이루는 곳을 지칭한다. 이곳에서 이이의 학문을 따르는 유학자들이 나왔으며, 그 학풍을 전수하여 기호학파가 만들어지게 된다. 기호지방의 중심인물은 이이·성혼·송익필이었으며, 그 제자들 가운데 유명한 학자들은 김장생·조헌·송시열·권상하 등이다. 특히 이이의 문인 김장생으로부터 송시열·권상하·한원진·이간·김창협·김창흡·김원행 등이 학파 흐름의 중심이 되었다.

이이의 학문적 입장은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행하는 것으로, 잘잘못을 들어 따지고 들어가는 논리성을 강조하면서, 어느 한편에 좋은 점이 있다 해서 전체를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이는 이기일원론 입장에서 이통기국설을 전개하면서 이황의 이발설을 비판하였다.
 
기호학파인 김장생은 예학(禮學)에 정통한 예학파 중심인물로 그의 예학은 송시열에게 전수되고, 이를 통해 서인(西人) 중심 기호학파가 만들어진다. 이후 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진 이이의 학통은 영남학파의 사단칠정논쟁에 버금가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 이어졌다. 이 논쟁은 '사람(人)과 사물(物)의 본성이 같은가(同), 다른가(異)'에 대한 철학적·이론적 논쟁으로 조선 성리학이 중국의 성리학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심성론 측면을 보다 정교하게 심화시켜 성리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한편 성혼에게서 배운 조헌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하여 충의(忠義)를 드러낸 실천적 유학자였다.

기호학파의 연원은 이이에서 비롯되었으나 주로 서인 중심이었다. 이 학파의 흐름은 예학과 의리학(義理學)으로 발전하였으나 당파적 갈등과 당쟁의 사상적 입장에 편승하여 후기로 내려갈수록 본래의 유연한 사상적 입장을 지나쳐서 경화된 느낌을 준다.
 

Ⅱ. 생각 확대하기
 
1. 철학사상

이이와 더불어 성리학에 대한 대표 학자로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계승하여,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철저한 철학적 사색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하여 연역적 방법을 채택,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여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혼자서 결단하는, 즉 말이나 행동에 조심성 없고 가벼움을 경계하였다. 그는 우주 만물은 이와 기의 이원적 요소로 구성되어 그 중에 하나라도 결핍되면 우주의 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기의 도덕적 가치를 말함에 이는 순선무악(사람의 처음에는 선한 것만 있고 악한 것은 없다.)한 것이고 기는 가선가악(사람이 착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다.)한 것이니, 즉 이는 절대적 가치를 가졌고 기는 상대적 가치를 가진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심성 문제를 해석함에도 역시 이러한 절대·상대의 가치를 가진 이기이원으로 분석하였다. 이것이 뒤에 기대승과의 논쟁이 벌어진 유명한 ‘사단칠정론’으로 이후 한국 유학자로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만큼 중요한 주제를 던진다. 그의 학문은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쳐, 에도 시대에는 기몬 학파와 구마모토 학파가 있었고, 메이지 시대의 교육 이념의 기본 정신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황의 학문적 근본 입장은 진리를 이론에서 찾는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진리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으로 지와 행의 일치를 주장,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성이요, 그에 대한 노력으로 ‘경(敬 공경)’이 있을 뿐이라 하였다. 그의 학문·인생관의 최후 결정은 이 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 경을 70여 생애를 통하여 실천한 것이 이황이었다. 그는 문학·고증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사상·학풍이 후세에 계승되어 영남학파를 형성, 유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퇴계학의 형성과 전개
 
퇴계학의 형성과 이황의 사상 

이황은 성리학 경향 중 주리적 입장을 최초로 확고하게 정립한 학자이며, 동시에 이학적 심학(心學)을 정립하였고 경(敬 공경)의 수양론을 내세워 인간의 도덕적 각성과 삶의 경건성을 강조했다.
 
이황 철학특징

이동설(理動說)
이기론(理氣論)에서 이가 스스로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는 이(理)의 능동성을 말한 설(說)

이발설(理發說)
사단칠정론에서 이발설

이도설(理到說)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넓힌다)에서 이도설(理到說)로 말해진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발설로 설명된다.  요즘 용어로 실사구시(實事求是)에 가깝다.


3.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조선 후기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이론. 같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이고,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다. 조선조 중기까지의 성리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였다. 그 결과  삶의 바탕이 되는 하늘에 대한 이치를 근거로 하여 하늘과 사람이 본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동물이나 식물의 삶도 본질적으로 하늘의 이치가 바탕이 되며, 역시 하늘과 하나라는 사실이 성립된다. 이러한 이론이 성립되면 관심의 대상이 저절로 사람과 동식물의 관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에 인물성동이론이 활발하게 전개된 까닭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원래 인간의 본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본연지성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존재가 되지만 기질지성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각각 기질에 따라서 구별되는 존재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때 의문은 본연지성 입장에서 볼 때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모두 동일한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주리적 성리학 정립
 
 이황의 사상 체계는 이의 존엄성과 절대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되었다.

4. 이황과 기대승 사단칠정 논쟁
 
논쟁의 결론으로 이황은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그것에 탄 것이다’라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자신의 최종적 견해로 제시하였다.
 
사단(四端)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순선(純善)한 마음이고, 칠정(七情)은 선하든 악하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이황의 견해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이가 발한다는 것, 곧 이의 능동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사단을 순선한 것, 칠정은 선악이 섞여 있는 것으로 사단과 칠정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점이다.

5. 주희의 理와 이황의 理


이황은 주로 인간의 내면에서 선과 악의 근거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도덕의 당위성을 더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주자학 중에서도 심성론에 치중하였다.

6. 본체론
 
이황의 본체론은 외적 자연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으며, 도덕론과 심성론에 기초한 본체론으로 인간에 대한 구조를 자연의 영역까지 확대한다.

7. 존재론

‘이는 존귀하고 기는 비천하다’, ‘이가 주인이라면 기는 하인이다’라는 견해 제시. 기는 자연운동의 물질적 근거이고 이는 자연운동의 근거이자 법칙성으로, 이기에 관한 본체론(도덕론과 심성론에 기초한 본체론)에서 나타나듯, 이황은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확보하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보다 더 엄격하게 이의 존엄성과 절대성을 확보하려고 했으며,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도덕적이어야 함’을 더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이황 사상의 큰 특징이며, 동시에 조선 성리학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도덕적이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이황은 경(敬)을 제시한다. 경은 도덕적 마음가짐을 말한다. 무슨 일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어느 경우든 자신의 본성과 일치되는 도덕적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 경이다. 이것은 주자학의 실천방법론인 거경궁리(居敬窮理)에서 거경에 해당한다. 그리고 거경을 통한 물질적 욕망의 차단을 중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황에게는 궁리의 측면이 덜 강조된다.
 
8. 거경궁리(居敬窮理)
 
주자학의 수양에 대한 두 가지 방법인 거경과 궁리를 말한다. 거경이란 내적 수양법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일이며, 궁리란 외적 수양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일을 말한다.

9. 거경의 학문 세계
 
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이황 역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를 사람됨의 완성에 두었다. 즉 이른바 사람됨의 완성을 위한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 자신의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의 추구가 그의 학문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이황의 경우 학문이란 명예나 물질, 권력을 위한 것이거나, 또는 단순히 관념체계의 논리적 천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됨의 완성을 지향하는 실천적 도덕학이었다.

10. 이이와 편지문답에서
 
1. 객관적으로 문자의 의미만을 탐구하는 태도
2.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주체적으로 성찰하는 태도
3. 더 나아가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그 참 맛을 느끼는 태도의 세 가지 학문태도를 말하였다.
 
이 가운데서 이황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언어 문자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성리학적 언어들이 지시하는 세계와 사물로 깊이 내려가서 그것들을 체험적으로 성찰하고 그 진리를 실천하려 하는 세 번째 태도이다. 그는 언어 문자를 단순히 의미론적으로 대하지 않고 삶의 생생한 현장에서 그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그것의 입체적인 파악을 도모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하려 하였다. 그는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에서도 ‘성현의 가르침을 빈말로 여기지 말고 반드시 체험적으로 성찰하고 실험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마음을 고요히 상제 대하듯 하라. 발걸음은 장중하게, 손놀림은 조신하게, 땅도 가려서 밟아, 개미 두둑까지도 돌아서 가라. 문을 나서 사람을 대할 때에는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에 임해서는 마치 제사를 받들 듯 하여,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할 것이오. 조금도 안일하게 나서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성취하려는 우주적 대아(大我)의 정신은 만물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열어 그것들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과 하나 되는 교감의 장을 마련했던 것이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이황과 기대승의 대화
 
이황은 기대승의 심성 수양공부에 대한 질의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마음은 만사의 근본이요, 성(性)은 만선(萬善)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선유(先儒)들이 학문을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는 것[收放心 수방심]’과 ‘덕성을 기르는 것[養德性 양덕성]’으로써 첫 공부를 시작하는 곳을 삼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수양의 바탕을 이루어 도를 성취하고 할 일을 넓혀 가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그러면 그 시작하는 요령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잡념을 버리는 것[主一無適]’이며 ‘경계하고 삼가며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것[戒愼恐懼 계신공구]’이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공부는 마음의 동정(動靜)에 통하고 경계하고 삼가는 경지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때의 공부이다. 이 두 가지는 어느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니 밖을 제어하여 안을 기름이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논어의 ‘세가지 살필 바[三省 삼성]’와 ‘세 가지 귀히 여길 바[三貴 삼귀]’와 ‘네 가지 금지해야 할 바(四勿 사물/말물)’와 같은 것들은 다 사물을 대하는 데에 나아가 말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마음의 근본자리를 기르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직 마음의 공부만을 주로 한다면 불교의 견해에 빠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황의 이러한 언급은 모두 마음을 보존하고 기르는 공부에 대한 주요한 견해이다. 이런 견해는 심경부주에서 강조한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나아가 이황이 만년에 성학십도를 지어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였을 때, 이황은 성학십도를 성학이라 하고 그 주요 내용을 심과 관련되는 경, 또는 심학으로 정리하였던 것이다.

삼성三省
『논어』, 「학이편」에서 증자가 날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해줌에 충성스러웠는가는가, 벗가 사귐에 성실하였는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했는가의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했다는 내용.

삼귀三貴
『논어』, 「태백편」의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 세 가지로 용모를 움직일 때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룰 때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하며, 말과 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함과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멀리하여야 한다는 내용.

사물四勿
『논어』, 「안연편」의 안연이 인을 행하는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대답했다는 내용.
 
2. 이황의 존재론
 
주자학에서 이와 기는 상즉(相卽 : 두 가지 사물이 그 본체에서는 서로 하나인 관계에 있는 일. 파도는 물이며, 물은 파도라고 하는 것과 같은 관계를 이른다.)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따라서 이황도 ‘천하에 이 없는 기가 없고 기 없는 이가 없다’, ‘이와 기란 두 존재는 선후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로 그 선후를 나누기 어렵다’고 하였다. 즉 이와 기를 상대적 두 근원으로서 파악하면서도 이 양자를 포괄하는 절대자를 나타내고자 할 때는 이를 내세웠다. 이황의 이에 대한 견해의 특성은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보다 능동적이고 독자적인 것으로서 파악하는 데 있다.
 
이황은 그의 이에 관한 학설을 정립해 가는 가장 중요한 사단칠정논쟁의 과정 중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만약 사물에 나타난 여러 가지 이를 두루 철저하게 탐구하여 마침내 이 이를 남김없이 환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면 이 이는 지극히 허(虛)하면서도 지극히 실(實)하고, 지극한 무(無)이면서도 지극한 유(有)이고, 동(動)하면서도 동함이 없고, 정(靜)하면서도 정함이 없고, 더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며 추호만큼도 이에서 덜어낼 수도 없는 것으로서 음양오행과 만물만사의 근본이 되면서 음양오행과 만물만사에 제한 받지 아니하는 것이니 어찌 기와 섞어서 한덩어리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 기와 더불어 한 사물이 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황의 이와 같은 이에 대한 규정 중 ‘사물에 나타난 여러 가지 이’란 구체적인 사물에 내재하여 있는 이로 그 사물로 하여금 그 사물이 되게 하는 원리이다. 이른바 ‘그러한 바의 까닭[所以然之故]’로 이이며 모든 개체가 ‘각기 지니고 있는 태극(各具一太極)’으로 이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이는 본원적인 이, 또는 통체적인 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가 전개된 한 부분의 이로 기와 상즉 된 이이며 보통 기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말해지는 이이다. 이러한 개별 사물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계속하여 ‘마침내 이 이를 남김없이 환히 꿰뚫어 본다’는 것은 개별 사물의 이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가면 마침내 통체적이고 본원적인 이 자체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주희의 격물치지설에 대한 이황의 해석이기도 하다.
 
그는 통체적이고 본원적인 이는 ‘지극히 허하면서도 지극히 실하고, 지극한 무이면서도 지극한 유이다’라 하고 또 ‘그 진실하여 조금도 거짓됨이 없는 점으로 말하면 이보다 더 실함이 없다’고 하였다. 즉 비록 이가 형체를 지니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실제로 있는(實有)’ 것이다. 이것은 이의 실체면에 대한 규정이다. 비어 있으면서(虛) 알맹이가 있고(實) 없으면서(無) 있다(有)라는 이의 실체면에 대한 규정은 물론 본체의 세계에서만 말해질 수 있다. ‘동하면서 동함이 없고 정하면서 정함이 없다’는 것은 이의 작용면에 대한 규정이다. 움직이면서(動)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면서(靜) 고요함이 없다는 것은 현상의 세계에 관계하는 형식논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하면서 동함이 없고 정하면서 정함이 없다는 이러한 이의 작용은 그것을 파악하는데 특히 정치한 내적 성찰과 사색을 요하는 이의 속성이다. 이러한 본체와 작용을 지닌 이를 환하게 꿰뚫어 본다는 그 앎(知)의 영역은 현상의 일상적 과학적 수준의 앎과는 다른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Ⅳ. 논제 찾아보기
 
주자학의 실천방법론인 거경과 궁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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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온 2015-06-09 04:21:45
퇴계의 학설에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해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하는데요.
근데 글중간에 퇴계학파에 기대승을 넣고 있네요.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