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된 역사
무기가 된 역사
  • 김경배 기자
  • 승인 2007.06.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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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정치적 무기로서의 ‘역사’
독일의 근현대사를 통해 본 역사조작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동북아시아의 한중일 3국간 총성없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역사학의 현실적 역할에 대한 논쟁도 구체화되었다.

자국의 역사를 강화하려는 세력과 그들을 비판하는 대안세력 간의 갈등은 동시에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특히 한국의 교과서 제도와 민족주의적 ‘국사’교육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된 ‘역사내전’은 이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같은 국가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이 진행되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국의 역사적 인식을 재정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남북분단 상황이다.

흔히 역사를 현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과거의 진실을 파악하는 학문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과거의 힘’으로 현재의 지배관계를 정당화하려는 세력에게 역사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기능한다.

이는 현존하는 지배관계를 부정하면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역사 연구에서 객관적인 자세는 필수지만 객관성과 역사정책적 전략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현재의 지배관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역사학적 갈등은 자연히 기존의 역사상을 고수하거나 바꾸려는 투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정책’이라는 개념으로 독일의 근현대사를 분석해 당대의 정치세력이 대중 선동에 역사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그려낸 역사서이다. ‘역사정책’은 일반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정부 정책을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실천 행위’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대중의 역사의식이나 기념일·기념비·매스미디어·역사교육·학계의 논쟁 등 사회 영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방식의 역사 관련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 저자 에드가 볼프룸은 이런 의미의 ‘역사정책의 역사’를 중심으로 1870년대의 프로이센-독일 통일부터 1990년에 독일이 재통일할 때까지의 독일 근현대사 100년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특히 독일 현대사의최대 화두는 나치 독재 정권을 탄생시킨 과거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극복’이었다. 전후 독일인들은 학계의 논쟁, tv드라마와 축제, 전시회, 대중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 인식을 재정립했는데, 이 과정 또한 당시의 역사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은 불과 한 세기 동안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 독재,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분단과 통일 등을 차례로 겪은 독일의 역사를 ‘역사정책사’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정치세력이 현재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과거의 힘’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는 정론의 역사가 실제로는 필요에 따라 조작·생산돼왔음을 폭로한다.

또한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다양한 권력 의지와 이해관계의 엇갈림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드러냄으로써 각각의 정치세력이 역사를 대중 선동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     © 독서신문
무기가 된 역사 / 에드가 볼프룸 지음|이병련·김승렬 옮김 / 역사비평사 펴냄 / 284쪽 /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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