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펠레스가 달아준 주홍 글씨
메피스토펠레스가 달아준 주홍 글씨
  • 김혜식
  • 승인 2007.06.0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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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귀는 귀한데 어찌 눈은 천한고’를 읽고
▲ 김혜식(수필가)     ©독서신문
요즘 일부 여인들은 헐값에 자신의 혼을 팔고 있다. 고작 3만원에 여성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저당 잡히다니.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여자로서 지켜야 할 본향마저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살림 사는 주부에겐 3만원은 어찌 보면 적은 돈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만약 수중에 3만원의 돈이 거저 주어진다면 그 중 만 원 정도는 책을 사겠다. 나머지 돈은 시장에 가서 장을 보겠다. 제철 과일과 반찬거리를 사서 가족들을 위해 저녁 식탁을 조촐하게 차릴 것이다.
이렇듯 돈이란 항상 쓰기 나름 아닌가. 적은 돈일 수록 유용하게 적절히 쓰는 게 살림 사는 주부의 몫이다. 돈이란 무엇에 의미를 두고 쓰느냐에 따라 그 효용 가치가 제대로 매겨지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파우스트처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한테 단 돈 3만 원에 자신의 혼을 팔아넘긴 여인들이 있다. 이 부끄러운 사실 앞에 같은 여성으로서 얼굴이 뜨거울 뿐이다.
일명 ‘묻지마 관광’이 그것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 화면엔 ‘묻지마 관광’을 마치고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어느 여인에게 리포터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그 여인은 급히 손바닥으로 카메라를 막으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년이면 인생의 쓴맛 단맛 다 겪은 연령 아닌가.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이렇듯 남 보기 떳떳치 못한 일을 왜 저지르고 다닐까? 방송국리포터의 취재 장소도 우리 고장에 위치한 체육관 앞이 아니던가. 남의 일이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곳에 아침 일찍 3만 원 만 들고 나가면 즐비하게 서 있는 ‘묻지마 관광’ 버스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타는 순간부터 그 안의 승객들은 순수한 관광객들이 아니다. 쾌락의 덫에 발목을 잡힌 추접한 남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姓), 연령 ,사는 곳도 일체 곁의 사람한테 묻지 않기에 ‘묻지마 관광’이 되는 셈이다. 아니 쾌락 대상의 일회용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명칭에 걸맞게 관광버스 안은 갑자기 요지경 속이었다. 그곳에 관광객으로 위장 잠입한 방송국 리포터의 몰카에 탈선한 남녀들의 모습이 포착 된 것이다.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생면부지 중년 남녀들이 벌이는 쾌락의 향연이 질펀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그 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몸을 비비고, 흔들고, 춤을 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꼴 볼견이었다.
한 가정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인 여인들이 아닌가. 아무리 일탈이 안겨주는 짜릿함에 혼을 빼앗겼다한들 어찌 거룩한 모성, 현숙한 아내로서의 위치마저 잊을 수 있을까. 가정보다 그 쾌감이 우선이란 말인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난잡한 탈선의 현장을 보며 문득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수필가이며 소설가인 이철호가 쓴 ‘귀는 귀한데 어찌 눈은 천한가’에 수록된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책 서두에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풍부한 지식, 높은 의식 수준에 만족치 못하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한테 자신의 혼을 팔아넘긴다는 내용이 있다. 그 대가로 파우스트는 지상에서 향락과 호사를 누리다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약속한 대로 24년 뒤에는 악마한테 사로잡혀간다고 했다.
이철호 님은 우리 일상에 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깟 영혼이 무어 그리 대수냐.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맘껏 잘 먹고 잘살며 실컷 향락을 누리라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끊임없이 우리 귀에 속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쩜 ‘묻지마 관광’ 에 나선 중년 남녀들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한테 자신의 아름다운 영혼을 값싸게 팔아넘긴 어리석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 땅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달콤한 유혹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이 건재 하는 한 ‘묻지마 관광’은 우리 주위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의식에 젖은 남녀의 탈선 장면을 매스컴을 통해서 본 나는 왠지 마음이 꺼림직 했다. 하여 나의 눈을 깨끗이 씻고 싶었다.
향락의 늪에 깊이 빠져 든 남녀들한테 진지하게 한 가지 질문하겠다. 이철호 님의 글처럼 ‘우리 시대의 파우스트’라는 주홍글씨를 언제까지 가슴에 매달고 살 것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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