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는 사람
편지 쓰는 사람
  • 신금자
  • 승인 2007.06.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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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신금자     ©독서신문
나는 어려서부터 편지 쓰는 사람이 참 좋았다.
반대로 마을 어른들이 아들딸의 편지를 받고 읽는 것도 보기 좋았다. 볕이 바른 양지쪽에서 읽고 또 읽어보며 눈 주위가 붉어져서야 고이 접어 품안에 넣던 모습이 마음을 한동안 잡아두곤 했다. 동네 어귀로 총총 사라지는 편지를 배달하는 집배원의 모습도 가끔 생각나는 쓸쓸하고도 따뜻한 모습이다.     
우리 할머니는 글자를 잘 모르시는데도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글씨도 비뚤비뚤 서툰 손녀에게 격식은 아주 점잖은 양반네 흉내를 내셨다. 그리고 내가 받아쓴 편지 말미에 “이 편지는 할머니가 가르쳐 주시고 손녀가 썼습니다.” 라고 밝혀두라셨다. 어머니도 종종 편지를 썼다. 종일 논밭에 엎드려 일하시니 주로 밤에 편지를 썼다. 등잔불을 밝혀놓고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며 골똘하신 모습을 보며 나도 곁에서 중언부언 끄적거렸다. 객지에서 언니와 오빠를 데리고 뒷바라지겸 돈벌이를 하시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앉은뱅이책상에서 빨간 세로줄 편지지에 얼기설기 내려썼던 글씨가 눈에 선하다. 절기에 따라 조금씩 진척된 농사일과 쌀이나 고구마를 부칠 것이니 언제쯤 찾아야한다는 이야기, 몸조심하라는 것과 잘 지낸다는 안부, 그리고 자식들의 입학과 졸업에 따른 의논 등, 어머니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놓아주고 싶은 염려를 꼭꼭 채워서 봉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는 낙향하신 아버지가 내게 자주 편지를 보내셨다. 아버지의 자녀교육이었을까. 부러 한자투성이로 편지를 보냈고 내게도 모르면 찾아서라도 한자를 섞어 편지를 쓰라셨다. 
지금 세대들은 모든 업무와 문서작성, 은행, 주식, 상거래, 통신, 심지어 일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해결한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그야말로 활자문화의 르네상스다. 그에 따른 쉽고 좋은 글에 대한 요구도 만만찮다. 어느 새 신세대가 아닌 나도 쉽고 빠르고 편하다는 생각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직접 쓰지 않게 된지가 꽤 되었다. 처음엔 컴퓨터에다 바로 글을 쓰는 일이 낯설어 애를 먹었다. 글을 쓸 때 연필만 사용하되, 그 연필심의 굵기에도 감정이 좌우될 정도였으니 기계에다 내 감정을 잇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주변에서 컴퓨터에다 글을 쓰는 것이 한결 편하다고  권해서 큰맘 먹고 시도를 했다. 아니나다를까 익숙해지니 더없이 편하다. 덜어서 옮기고, 지우고, 보내고, 보관까지 해주니 말이다.
바야흐로 자판 두들기는 맛을 조금 느끼려는데 아들이 입대를 했다. 편지지에 직접 편지를 쓸 수밖에 없다. 평소 딸은 카드를 만들거나 편지지를 사서 깨알 같은 글씨의 편지를 써서 곧잘 내밀곤 했다. 한데 아들은 편지는커녕 일기 한 줄 쓰지 않아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군대에 가더니 부지런히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군사우편이라 ‘빠른우편’으로 보내도 일주일쯤 걸렸지만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쓰고 그 답장의 답이 오고 , 또 가고 하다보니 늘 편지가 오거나 가고 있었다. 사뭇 힘든 훈련을 견디는 데는 편지가 최고더라는 것이다. 편지를 내무반 소등이 된 후에 화장실에 가서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하여 한 통의 편지가 사흘 정도는 힘든 줄 모르고 훈련에 임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편지의 위력이다. 여간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녀석이 바다 저편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노을을 적어보내기도 하였고 병영일기를 세세하게 적어서 외려 부모를 걱정하는 등, 편지와 함께 아들도 성큼성큼 자랐다.        
 
금번 국방부에서도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군사메일을 통하여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안부를 빠르고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편지를 사랑하던 군인들마저 편지를 개봉하며 설레던 마음을 간직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지 얼마간의 노파심이 일었다.
하나, 진정 가슴으로 서로를 느낄 수 있다면 이메일이든 수기든 뭐 그리 대수겠는가. 편지란 쓰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게 되고, 받은 사람은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된다. 결국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나누는 길은 서로를 지그시 생각하며 쓰는 편지일 것이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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