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9>정제두의 양명학
조선 명문가의 독서교육 _ <9>정제두의 양명학
  • 독서신문
  • 승인 2011.03.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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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정제두(鄭齊斗·1649~1736년)는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다. 우의정 정유성(鄭維城)의 손자로 자는 사앙(士仰)이고, 호는 하곡(霞谷)이다. 소년시절 몇 차례 과거시험에 실패했고, 스무살 무렵부터 박세채(朴世采)의 제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주자학을 공부하였으나 곧 양명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과거시험은 포기하였다. 그러나 32세 때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공직에 나간 뒤 이조참판, 대사헌, 우참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다.
 
그는 당시에는 배척되던 양명학(陽明學)의 체계를 세워나갔다. 양명학은 명나라의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 이룩한 새로운 유가철학이다. 그는 지식인들이 주자를 파는 세태를 비판했다. “주자의 학문을 말하는 자는 주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자를 핑계대는 것이요, 더 나아가 주자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 사사로운 계책을 이루려는 것이다.”  결국 이황과 이이의 성리설도 비판 대상이 되었다.

이에 박세채는 양명학을 버리고 성리학으로 돌아오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정제두는 “왕수인을 연구하는 게 특이한 것을 구하려는 튀는 행동이 아니다. 학문을 하는 것은 성인의 뜻을 찾아서 실제로 얻는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의 사상은 아들 정후일을 비롯하여 윤 순, 이광사, 김택수 등이 계승했다.
 
그는 가훈에서도 양명학 공부를 당부하고 있다. 가훈 한 구절을 보자. ‘학문은 후세인의 눈으로 볼 때 의심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하면 주자 등 성인의 뜻도 밝지 못한 게 있다. 오직 왕수인의 학설은 참된 진리가 터득되었다. 남몰래 일찍부터 이에 뜻을 기울이고 마음을 닦아 대략 훑어보았으나 아직도 다 읽지 못해 한스럽다. 이에 그 책들과 초록을 넘겨주니 내 뜻을 잊지마라.’

그의 실질을 추구하는 정신은 가훈에 살아숨쉬고 있다. ‘책을 읽어 반드시 지식을 구하되 꼭 그 내용을 간략하고 자세하게 익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필요도 없는 것을 넘치도록 읽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책에서 교훈을 얻으면 죽을 때까지 이로움이 많겠으나 다만 많이 읽는다고만 해서 과연 무엇이 이롭겠는가.’
 
그는 또 아이들은 스승을 구해 가르치도록 했다. 부형이 가르치면 감정이 개입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아이들은 온순하게 지도해야 함도 강조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스스로 학문을 가르치고 독려하고 책망하지 말라. 훌륭한 스승을 모셔 교육을 맡기도록 하라. 반드시 어진 스승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그 기운을 꺾거나 크게 펼치려는 뜻을 좌절시켜서는 안된다. 오직 순하게 지도해야 한다. ‘

정제두가 후학에게 남긴 말 중의 하나가 의연후취(義然後取)다. ‘욕을 버리고 의롭고 정당하다는 것을 안 후에 취하라’는 것이다.

 / 이상주(『세종대왕 가문의 500년 야망과 교육』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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