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공황, 기존 모순들의 일시적·폭력적 해결
세계대공황, 기존 모순들의 일시적·폭력적 해결
  • 독서신문
  • 승인 2011.01.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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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_ 자본주의 경제의 공황 : 공황의 개념과 역사 Ⅱ

 
 
각 국민경제와 다국적기업들, 그리고 국제기구들(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유럽연합 등) 사이의 거래와 소통으로 이뤄지는 세계경제는 세계 gdp, 세계 실업률, 세계 산업생산, 세계 교역량, 세계 1인당 소득 등의 경제지표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지표들이 나타내는 ‘경제활동’의 급격한 변화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세계대공황 시점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1900~2010년에는 세계대공황이 1930~1938년과 1974~1982년에 폭발했으며, 그리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경제가 공황을 만들고, 공황이 경제를 변화시켜

세계대공황은 세계경제 발달과정에서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점(또는 모순)이 폭발되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이런 문제점들을 일시적으로 폭력 해결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대공황에서는 세계적 신용거래로 얽혀있던 금융투기가 붕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세계적 금융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국내달러를 세계화폐로 승격시킨 패권국 미국이 일으킨 ‘국제적 불균형’(예: 금융 발달국 미국의 거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의 거대한 수출 흑자와 달러보유액)이 큰 문제점이었는데, 이제 대공황을 통해 미국의 달러패권이 점점 축소될 전망이다.

이처럼 경제가 공황을 만들어내고 공황이 거꾸로 경제를 변화시키는 교호작용(interaction)은 한 나라의 경제와 공황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공황은 항상 기존 모순들의 일시적 폭력적 해결에 지나지 않으며, 교란된 균형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는 강력한 폭발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론Ⅲ』(상권 중)
 
1930~1938년의 대공황 기간에 미국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56%(1930~2009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3.42%)로 격감했고, 실업률은 연평균 18.38%(1930~2009년의 연평균 실업률은 5.56%)로 격증했다.

이 대공황을 폭발하게 한 경제체제는 1870년대부터 경제학을 지배한 신고전학파의 시장근본주의적 자유방임체제였다. 그러나 시장근본주의는 이미 1914~1918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신용을 잃었고 1930년대 대공황에 의해 다시 권위를 상실해 버렸다. 이런 바탕에서 1930년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한 뉴딜정책과 히틀러 총리에 의한 나치즘이 등장한 것인데, 이 대공황은 사실상 1939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극복됐다. 세계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경제와 각국 경제는 상당한 체제개선을 단행했다.

우선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여 앞으로 금과 미국 달러를 세계화폐로 사용하며, 타국 중앙은행이 미국달러 $35를 미국 중앙은행에 제시하면 미국 중앙은행은 금 1온스를 주어야 하고, 각국 통화와 미국 달러 사이 환율은 ‘국제수지에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고정된다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이 설립됐고, 저개발국의 상태 개선을 위한 금융적·기술적 원조 제공을 위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흔히 ‘세계은행’으로 부름)이 설립됐다.

둘째, 국내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토대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혼합경제체제가 확립됐는데, 특히 유럽에서는 공익사업(전화, 철도, 수도, 전기, 통신 등)이나 주요 기간산업(철강, 석탄, 자동차 등)이 국유화됐고 정부가 경제정책을 통해 산업, 재정, 금융, 외환, 노동 문제에 개입하게 됐다.

셋째로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확장하고 개선했다. 학교와 병원을 모든 사람에게 무료 개방했고, 실업급여과 연금제도가 확립됐으며, 시민들에게 개인 소득에 따라 월세가 달라지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제공 및 저소득층 생계비 보조를 했다.

넷째, 실업자를 없애는 완전고용정책이 정부 경제정책 중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자리잡아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외국에 자본 투자로 국내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통제(capital control)’를 강화했다.

그런데 복지사회와 완전고용은 소득 불평등 심화를 막고 일자리를 창출해 국내시장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성장률을 상승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했는데, 높은 성장과 평등한 분배가 동시에 달성된 1950~1970년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불리게 됐다.
 
1950~1970년 활황기 후 스태그플레이션 원인들

1974~1982년 세계대공황의 원인을 흔히 1973년 10월부터 12월까지, 그리고 1979년부터 1980년까지의 석유가격 폭등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세계통화제도가 미국 달러 과잉공급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1961~1975) 수행에 너무 많은 달러를 해외에 지출했고, 미국 달러 가치가 폭락, 금 1온스 가치가 800달러까지 급등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미국 달러를 금과 교환해 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으며, 1973년부터는 고정환율제도가 폐기되고 환율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됐다. 이것은 사실상 전후의 imf체제가 붕괴된 것이었으며 각국 경제와 세계경제가 축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사회보장제도와 완전고용정책 및 장기 호황으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세력이 증가하고 있던 상황에서, 작고 가난한 나라인 북베트남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무자비한 폭격과 남베트남에서 활약한 베트콩(vietcong.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및 농촌주민에 대한 잔인한 공격이 미국과 세계의 모든 양심세력으로부터 거대한 비판을 받았다.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포드주의적 생산방법은 단순하고 따분한 작업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의 무단결근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올릴 수 없었고, 제품 안전성과 공해방지를 강조하는 시민운동으로 기업은 수익성을 올릴 수 없었으며, 혁신(새로운 상품, 기술, 노동과정 등)이 나타나지 않아 시장은 포화상태에 빠지게 됐다.

셋째,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바라는 닉슨 대통령은 재정금융확장정책 채택을 위해 서독과 일본에 마르크와 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지만, 서독과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보유한 거대한 달러를 대규모로 빨리 지출하려 했다.

특히 일본은 대내적으로는 공공사업 조기집행, 지속적인 금리인하,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 증대 등을 실시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일본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해외투자 장려와 농산물과 광산물 등 원자재 비축을 종용했다. 그 결과 세계 전체에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됐다.

그런데, 기술혁신 부진과 노동조합 세력 증대로 수익성이 낮은 상황에서 재정금융확장정책이 실시됐기 때문에, 이 자금들은 유통분야에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게 됐다. 이런 전반적인 투기적 활황 속에서 1973년 10월 opec이 석유가격을 인상,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생산 활동 침체와 인플레이션 진행이 동시에 존재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난 것이다.     

이 외에도 각국 정부가 1974년 봄부터 인플레이션 억제 및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긴축정책을 실시하면서 원자재, 토지, 건물, 주식 등 투기가 몰락해 공황이 폭발했고, 1950~1970년 황금기 종말과 함께 기업 및 은행 도산, 실업자 급증, 노동조합과 시민운동의 활성화, 세계 패권국 미국의 헤게모니 상실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uncertainty)이 모든 분야를 지배하던 시기에 극우 보수 세력이 주요국에서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가 1979~1990년 동안 총리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1981~1988년 동안 대통령을 지냈는데, 이들이 제창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1974~1975년 공황 극복을 위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세우는 사상체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외치는 구호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어야 더욱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져야 더욱 열심히 일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나는 ‘무당경제학’이라고 부른다. 

-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정리 = 김성희 기자
 
*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김수행 성공회대 교수가 ‘자본주의 경제의 공황’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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