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옥이 지은 ‘가훈’의 제2항 입학(入學)
최 옥(1762~1840)은 조선 정조와 순조시대 학자다. 최 옥은 가훈에서 11가지를 말했다.
이중 첫째 항목이 자녀 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어머니의 모성애가 자칫 아이를 망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는 자식의 불효 원인중 하나를 어머니가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아버지가 알지 못하게 하는데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대개의 어머니는 아들이 닭을 훔치고 과일을 따먹으면 아버지가 알지 못하도록 숨기고, 혹 아버지가 알고 회초리로 때리면 여러가지로 두둔한다고 말했다.
또 손님접대 후 남은 음식을 몰래 보관했다가 먹여 아이의 절도가 없어진다고 보았다. 아이가 넘어져 다치면 계집종의 볼기를 치며 나무라지만 아이에게 천천히 걸으라고 주의를 주지 않는다고 세태를 비판했다.
최 옥은 어린 시절의 교육이 인생을 결정하기에 어머니가 특히 관심을 쏟을 것을 말한 것이다.
최 옥은 가족에게 독서를 하여 실력을 얻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독서 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자신이 맹자를 읽으면서 느낀 것을 후손에게 말해 그대로 실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첫째, 남의 잘못 된 점을 말하지 말라. 그 후환이 어떠한 가를 생각하라.
둘째, 어진 마음이 없는 사람을 심하게 미워하지 말라. 내 마음이 극히 어지러워진다.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의 아버지이기도 한 최 옥은 글과 청렴함으로 이름을 떨친 유생이다.
퇴계 이황에게서 시작된 영남학파 남인의 학맥을 계승한 그는 향시에 8번 붙었으나 경시는 포기해 벼슬길에는 오르지 못했다.
경상도에서 행세를 하던 양반이었던 그의 가정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아내와 사별했고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이후 인근에 살던 과부 한씨(韓氏)와 다시 혼인을 해 63세에 아들을 얻었는 데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다.
그러나 최 옥은 한씨를 아들이 여섯 살때 잃었고, 자신도 아들이 17세 때 숨졌다.
최제우는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으나 재혼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전국을 돌다가 깨달음을 얻어 동학을 창시했다. 최 옥은 문집으로 『근암유고』를 남겼다.
/ 이상주(『세종대왕 가문의 500년 야망과 교육』 『유머가 통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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