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회의록
금수회의록
  • 황인술
  • 승인 2007.05.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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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생 논술교실
Ⅰ. 생각해보기 


1.『入學圖說』을 통해 본 권근의 성리학

『入學圖說』은 보물 제11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책은 陽村 權近(1352~1409 려말선초에 활약한 당시의 대표적 유학자이다)이 처음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저술한 성리학 입문서로, 전집 단간본과 전·후집 합간본의 두 가지가 있다.  『入學圖說』은 다양한 그림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첨부하여 성리학의 의미를 드러내었다. 이 그림들은 조선 유학사에서 중요한 사상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그림을 통해서 그가 탐구한 주제들이 그 이후 조선 유학의 탐구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집에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등 26종, 후집에 「십이월괘지도(十二月卦之圖)」 등 14종의 도설이 실려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도설로 평가 받고 있는 「천인심성합일지도」는 성리학의 중심개념인 태극·천명·이기·음양·오행·사단·칠정 등의 문제를 하나의 도표 속에 요약하고 이들의 상호관계와 각각의 특성들을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도설은 후대에 이황과 정지운의 『천명도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의 사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入學圖說』에 실린 그림 중에서 중요한 것은  天人心性合一之圖, 天人心性分釋之圖, 大學之圖, 中庸首分釋之圖 등이다. 특히 天人心性合一之圖는 입학도설 전편을 통해서 그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으며,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기본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天人心性合一之圖는 儒學의 根本인 天人合一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天․人․心․性 네 글자가 혼합된 그림이다. 우선 白(陽․氣)과 黑(陰․質)으로 上圓(頭)과 下方(下部)을 그렸다. 이 그림을 잘 살펴보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 얼굴 부위인 上部에는 太極․天命․陰陽․五行의 내용이 담겨져 있고, 中央의 心字 위에는 理之源과 氣之源을 구분하여, 理之源에서는 四端의 情(純善無惡)을 氣之源에서는  七情(可善可惡)을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四端의 밑에는 誠을 두고, 七情의 밑에는 敬을, 惡幾의 밑에는 欲을 배치하여, 聖人과 衆人을 구분 하여 성리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


2. 『入學圖說』 해설

1) 우주론(宇宙論) 

일반적으로 주자학자들은 우주만물의 근원으로서 天을 내세운다. 天이란 大와 一로 이루어진 글자로 모든 변화의 원천이자 만물의 근원이라는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권근은 天이 陰陽․五行의 氣를 가지고 만물을 생성한다는 주자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만물의 생성을 설명한다.

저 천지의 조화는 낳고 낳음이 무궁한 것이니 가버린 자는 쉬고 오는 자가 이어지면서, 사람과 짐승․풀과 나무 등 천만 가지의 형상이 제각기 성(性)과 명(命)이 바른 것(正)은 모두가 하나의 태극(太極) 가운데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각각 하나의 理를 갖추고 있으며 만 가지 이치(萬理)가 똑같이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왔으니, 풀 한 포기․나무 한 그루까지도 각각 하나의 太極을 가지고 있으므로 천하에 성이 없는 사물(性外之物)은 없는 것이다. 

즉 天은 陰陽 五行의 氣로 만물생성의 근원. 태극이자 理이며 天道와 人道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2) 심성론(心性論)

  사람(人) 글자 위의 하나는 理이며 아래 둘은 선과 악을 뜻한다. 사람(人)과 사물(物)이 서로 다른 이유는 理는 같으나 氣에 통하고(通), 막히고(塞), 치우치고(偏), 바름(正)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며, 바르고 통한 기운은 사람이 되고 막히고 치우치면 사물이 된다. 사람도 기에 따라 성인과 중인으로 나누어진다. 仁은 천지가 사물을 생(生)하는 이치이고, 사람은 이를 타고나서 心이 되었다. 心은 하늘에서 받아서 우리 몸을 주관하는 것으로 理와 氣가 묘하게 합해져서 비어있으면서도 신령스럽고 통철하며 신명(神明)이 머무는 집이 되고 性과 情을 거느렸으니 이른바 밝은 덕(明德)으로서 모든 理를 구비하여 만사에 대응하는 것이다. 性은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은 바 그 생명의 理가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글자가 心과 生으로 구성되었다. 사람과 사물의 理는 같으나 기질의 품수한 바가 같지 않음에 있는 것다.

3) 수양론(修養論)

  「천인심성합일지도」 하단부 心圖 밑으로 성자권(誠字圈), 경자권(敬字圈), 욕자권(欲字圈)을 배정해 놓았다. 이 중에서 四端의 밑으로는 성자권을 배정하고 七情의 밑으로는 욕자권과 경자권을 좌우로 배정시켰는데, 誠은 성인의 성(性)으로 진실무망(眞實無妄)하고 순역불이(純亦不已)하며, 敬은 존양(存養)과 성찰(省察)로서 군자가 닦아나가야 할 덕목이며, 欲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함으로서 중인(衆人)을 해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誠은 순수한 마음, 참될 성으로 성인의 性을 말하는 것으로 진실무망하고 순역불이(順逆不二)한 것이며, 敬은 공경, 정중, 예의바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存養과 성찰로서 군자가 닦아나가야 할 덕목이다. 欲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중인(衆人)을 해치는 것으로 수양을 통해 군자가 성인으로 나아가고, 중인도 자포자기하지 않으면 군자나 성인이 될 수 있다.

4) 경세론(經世論)

  유학의 목적은 수기안인(修己安人)이자 내성외왕(內聖外王)이다. 진실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한다면 孝와 悌를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부린다면 백성을 부리는데 삼가 할 바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무일지도」에 군주의 일락(逸樂)과 태만(怠慢)함을 경계한다. 그는 말하기를 “자고로 천하에 국가를 가진 자 모두가 선조의 근검에 의하여 흥성하였다가 그 자손의 게으르고 나태함(逸怠)에 인하여 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경고한 다음 계속해서, “백성은 밭둑과 논둑에서 일 년 내내 애써 일하여 임금께 바치는데, 인군은 깊은 궁중에 살면서 그 농사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그 백성을 구제하지 않고, 교만하고 사치하며 음란하고 방탕하여 오만하게 스스로 방자함으로써, 작게는 목숨을 잃고 몸을 망치며 크게는 나라를 잃고 종사(宗祀)가 끊기게 됨은 세세(世世)로 공통된 화라고 하겠으니 이는 만세 인군의 마땅히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일인 것이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런 다음 중국 고대의 군주들이 항상 방종과 게으름과 일락을 삼가 함으로써 나라를 유지해 왔고 그렇지 못할 때는 나라를 잃었다는 사례들을 열거하고, 이런 無逸을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敬공부를 통한 군주의 지속적인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하늘은 만물의 근원이며 모든 이치(理)의 근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자연의 질서(天道)를 파괴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유교윤리 회복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Ⅱ. 생각확대하기

1. 『금수회의록』

  한말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안국선이 쓴 신소설로, 1908년 황성서적업조합(皇城書籍業組合)에서 활자본 1책으로 출간되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나'가 꿈속에서 까마귀·여우·개구리·벌·게·파리·호랑이·원앙새 등 8마리 동물의 회의를 참관한 내용을 기록한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다.

  등장하는 8마리 동물에 따라 소제목으로 나뉘는데, 이 동물들은 인간의 비리를 상징한다. 즉,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를 지킬 줄 모르고, 여우같이 간사하고, 벌처럼 정직하지 못하고, 창자가 없는 게보다 못하고, 파리처럼 동포를 사랑할 줄 모르고, 호랑이보다 포악하며, 원앙이 부끄러울 정도로 부정한 행실을 폭로함으로써 인간세계의 모순과 비리를 규탄한다.

  이 작품은 권선징악이나 이야기 서술에 치우친 대부분의 신소설과는 달리 1인칭 관찰자 시점의 구체성을 확보한 현실비판의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발간 3개월 만에 재판을 인쇄할 만큼 대중들에게 널리 읽혔으나, 1909년 5월 출판법에 의해 압수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판매 금지된 소설이 되었다. 금수를 빗댄 신랄한 풍자 속에 일본의 대한(對韓) 정책과 친일정부 대신들을 비판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하였다는 이유였다.

  인간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작품의 바탕에는 성찰과 회개에 따른 구원가능성을 믿는 기독교 사상이 흐르고 있다. 동물의 회의를 중심으로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토론체 소설, 계몽성을 띤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에서 정치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금수 회의소'라는 모임 장소에서 8종류의 동물들이 회의를 통하여 인간의 온갖 악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회장인 듯한 물건'이 금색 찬란한 큰 관을 쓰고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태도로 회장석에 올라서 개회 취지를 밝힌다. 이 회의의 안건은 '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일, 제삼, 지금 세상사람 중에 인류로서 자격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조사할 일' 등이었다. 이러한 안건을 가지고 토의를 시작한다.

  이 때 제 일석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물을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내용은 [반포의 효(反哺之孝)]를 예로 들면서 인간을 비난한다. 그리고 제이석의 여우가 등단하여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간사한 목소리로[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면서 인간의 간사함을 성토한다. 제삼석의 개구리는 [정와어해(井蛙語海)]의 예를 들어 분수를 지킬 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인간을, 제사석의 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예를 들어 인간의 이중성을, 제 오석의 게는 [무장공자(無腸公子)]의 예로써 외세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비난한다.

  그리고 제 육석에 앉아 있던 파리는 [영영지극(營營之極)]을 들어 인간의 욕심 많은 마음을, 제7석에서는 호랑이가 [가정이맹어호(苛政而猛於虎)]를 들어 인간의 험악하고 흉포한 점을 성토한다. 제팔석에서는 원앙이 [쌍거쌍래(雙去雙來)]를 예로 들어 인간의 더럽고 괴악한 심성을 폭로한다.

끝으로 회장이 나서더니 "여러분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다 옳으신 말씀이오. 대저 사람이라 하는 동물은 세상에 제일 귀하다, 신령하다 하지마는 나는 말하자면,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고, 제일 괴악하다 생각하오. 그 행위를 들어 말하자면 한정이 없고 또 시가니 진하였으니 고만 폐회하오."라며 폐회를 선언한다.

  이 때 그 회의 장소에 모였던 짐승들은 일시에 나는 자는 날고, 기는 자는 기고, 뛰는 자는 뛰고, 우는 자도 있고, 짖는 자도 있고, 춤추는 자도 있어서 인간의 온갖 악증을 성토하며 돌아간다.

이러한 동물들의 인간 세태 성토 광경을 보고 들은 '나'는 "내가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고!"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독교적 설교 형식을 빌어 인간 구원의 길을 역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마지막 설교는 다음과 같다.

  "예수 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2.『금수회의록』 구성

  8가지 동물이 차례로 인간의 제반 문제점을 성토하는 회의 광경을 광경을 '나'가 관찰하는 구 성.(액자소설)

제일석(第一席) : 까마귀 - 반포지효(反哺之孝)(출전-[금경])
제이석(第二席) : 여우 - 호가호위(狐假虎威) (출전-[전국책])
제삼석(第三席) : 개구리 - 정와어해(井蛙語海)(출전-[장자])
제사석(第四席) : 벌 - 구밀복검(口蜜腹劍)(출전-[십팔사략])
제오석(第五席) : 게- 무장공자(無腸公子):창자 없는 동물(출전-[포박자])
제육석(第六席) : 파리 - 영영지극(營營之極):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의 절 정.(출전-[시전])
제칠석(第七席) : 호랑이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출전-[예기])
제팔석(第八席) : 원앙 - 쌍거쌍래(雙去雙來):함께 오고 가고 함.

때문에 인간은

①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른다.
②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을 모른다.
③여우보담도 간사하다.
④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다.
⑤창자 없는 것은 게보다 심하다.
⑥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른다.
⑦호랑이보담도 포악하다.
⑧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다.

3.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

  여우가 연설단에 올라서서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것처럼 기침 한 번을 캑 하더니 간사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여우올시다. 점잖으신 여러분 모이신 데 감히 나와서 연설 하옵기는 방자한 듯 하오나, 저 인류에게 대하여 소회가 있삽기 호가호위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말씀을 하려 하오니, 비록 학문은 없는 말이나 용서하여 들어 주시기 바라옵니다.

  사람들이 옛적부터 우리 여우를 가리켜 말하기를, 요망한 것이라 간사한 것이라 하여 저희들 중에도 요망하든지 간사한 자를 보면 여우같은 사람이라 하니, 우리가 그 더럽고 괴악한 이름을 듣고 있으나 우리는 참 요망하고 간사한 것이 아니요, 정말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지금 우리와 사람의 행위를 비교하여 보면 사람과 우리와 명칭을 바꾸었으면 옳겠소.

  사람들이 우리를 간교하다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전국책(戰國策)』이라 하는 책에 기록하기를, 호랑이가 일백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구할새, 먼저 여우를 얻은지라, 여우가 호랑이더러 말하되,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모든 짐승의 어른이 되게 하였으니, 지금 자네가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모든 짐승이 나를 보면 다 두려워하느니라. 호랑이가 여우의 뒤를 따라가니, 과연 모든 짐승이 보고 벌벌 떨며 두려워하거늘, 호랑이가 여우의 말을 정말로 알고 잡아먹지 못한지라. 이는 저들이 여우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니,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모든 짐승으로 하여금 두렵게 함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빙자하여 우리 여우더러 간사하니 교활하니 하되, 남이 나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도록 주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호랑이가 아무리 산중 영웅이라 하지마는 우리에게 속은 것만 어리석은 일이라. 속인 우리야 무슨 불가한 일이 있으리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당당한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 (손뼉 소리 천지진동)

또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소? 각국이 평화를 보전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서 도덕상으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전혀 병장기의 위엄으로 평화를 보전하려 하니 우리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제 몸의 죽을 것을 피한 것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오? 또 세상 사람들이 구미호(九尾狐)를 요망하다 하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 아는 것이라. 옛적 책을 볼지라도 꼬리 아홉 있는 여우는 상서라 하였으니,『잠학거류서』라 하는 책에는 말하였으되, 구미호가 도(道) 있으면 나타나고, 나올 적에는 글을 물어 상서를 주문에 지었다 하였고, 왕포『사자강덕론』이라 하는 책에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구미호를 응하여 동편 오랑캐를 돌아오게 하였다 하였고,『산해경(山海經)』이라 하는 책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구미호가 있어서 덕이 있으면 오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책을 볼지라도 우리 여우를 요망한 것이라 할 까닭이 없거늘, 사람들이 무식하여 이런 것은 알지 못하고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요사스러운 여편네로 화한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옛적에 음란한 계집이 죽어서 여우로 태어났다 하니, 이런 거짓말이 어디 또 있으리요. 사람들은 음란하여 별일이 많되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우리는 분수를 지켜서 다른 짐승과 교통하는 일이 없고, 우리뿐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러하시되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음란하기가 짝이 없소. 어떤 나라 계집은 개와 통간한 일도 있고, 말과 통간한 일도 있으니, 이런 일은 천하만국에 한두 사람뿐이겠지마는, 한 숟가락 국으로 온 솥의 맛을 알 것이라. 근래에 덕의가 끊어지고 인도(人道)가 없어져서 세상이 결딴난 일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되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짐승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대갓집 규중 여자가 논다니로 놀아나서 이 사람 저 사람 호리기와 각부아문(各部衙門) 공청에서 기생 불러 놀음 놀기, 전정(前程)이 만리 같은 각 학교 학도들이 청루(靑樓) 방에 다니기와, 제 혈육으로 난 자식을 돈 몇 푼에 욕심나서 논다니로 내어놓기, 이런 행위를 볼작시면 말하는 내 입이 다 더러워지오. 에 더러워, 천지간에 더럽고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저들끼리 간사한 사람을 보면 여우라 하니, 그러한 사람을 여우라 할진댄 지금 세상사람 중에 여우 아닌 사람이 몇몇이나 있겠소? 또 저희들은 서로 여우 같다 하여도 가만히 듣고 있으되, 만일 우리더러 사람 같다 하면 우리는 그 이름이 더러워서 아니 받겠소. 내 소견 같으면 이후로는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말고 여우라 하고, 우리 여우를 사람이라 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

Ⅲ. 생각 정리하기

『금수회의록』은 주제의식을 강하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금서조처와 함께 회수당한 작품으로 인간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순됨을 고발한 소설로 금수의 발언을 통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수 회의 진행 형식은 대화식 토론은 아니지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발언을 할 때에는 반드시 발언권을 얻고 있으며, 합당한 발언을 하면 공감을 얻는 등 일반적인 회의 진행과 유사하다. 연설은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금수를 등장인물로 하여 자기 의견을 개진할 때 묘사를 배격한 철저한 연설체 산문 형식이다. 이런 요인은 안국선이 금수회의록 발표 전 1907년에 '연설방법'이란 책을 펴내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개화기 정치 경제적 현실에 깊은 통찰력을 소설 작품의 표현 양식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런 연설 형식으로 된 개화기 소설에 '경세종' '만국대회록'이 있는 것을 보면 안국선 특유의 산문 양식만은 아니다. 사상적 배경으로는 먼저 기독교적 이상주의를 들 수 있다. 사회적 비판의식은 주로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며, 작품 속에서 성경의 원용이라든지 특히 처음과 끝부분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 주제를 부각시키는 점, 또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등은 살펴보면 작가가 기독교적 이상주의를 표방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겉에 드러난 책명과 인명, 그리고 각 동물 연사의 이름 옆에 '사자성어'로 된 별명이나 그 동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일러 주는 관용어를 덧붙인 점을 보면 동양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Ⅳ. 논제 찾아보기

『금수회의록』은 근대 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동물들의 입을 빌려 봉건지배층의 타락상이나 제국주의 세력의 부당성, 그리고 일반 시정의 흐트러진 세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현실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즉 '권선징악'에서 탈피, 인간의 본질을 통하여 인생을 보려는 태도가 보이고 있다.

  이 중  권근의「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를 참고하여 『금수회의록』에서 나타내고자 한 인간 본질을 설명하고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Ⅴ. 쉬어가기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나의 과거와 미래/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씽씽 바람 불어라……


歸天 - 황인술

자본이 우선시 되는 세상. 돈이 있으면 죄도 용서받는 세상. 그래서 누군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외치며 죽음을 선택했다. 가난은 불편하다. 자본의 논리에 지배받고 있는 땅. 그 땅 한 복판에 인사동이 있고 그곳에 가면 ‘귀천(歸天)’이라는 찻집이 있다. 욕심 없는 천진무구함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이 운영하는 10여석 정도의 작은 찻집이다.

그는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으며, 시 쓰기만 했으며 이런 그를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천재시인’, ‘기인’, ‘자유인’, ‘천상시인‘이라고 불렀다. 시인은 1967년 6월 25일,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전기고문 등 숱한 고문을 받고 폐인이 되다시피 한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로 보낸 생활 때문에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지고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고  1972년 말 퇴원하여 녹음이 푸르른 5월 14일, 김동리 선생의 주례로 시인은 목순옥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게 된다. 목순옥은 27년 동안 한결같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사랑을 쏟아 부었다. 아무튼 그는 소요음영(逍遙吟詠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림)하면서 동료 문인들에게 술값과 밥값 명목으로 거리낌 없이 2천 원씩 뜯어내 그 돈으로 막걸리를 사먹었다. 그러고도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고 즐거워했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었던 악의 없는“갈취범”을 싫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예금통장은 없”다고 선언한 그를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귀천」”면서 1993년 4월 28일 마침내 시인은 많은 울음을 뒤로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 천상병 [千祥炳, 1930.1.29~1993.4.28]  시인 겸 평론가.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렸으며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주요 작품으로 「새」, 「귀천歸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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