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의 민중사적 접근
추사체의 민중사적 접근
  • 신금자
  • 승인 2007.05.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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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 신금자     ©독서신문
패키지여행 중에 빼놓지 않고 관람하는 곳이 옛 왕궁이다.
서민들과 달리 역시 궁중생활은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그 뿐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상류층 귀족들이 누리고 추구한 그림과 건축, 조각, 음악, 춤 등은 또 하나의 문화코드로 광대하고 풍부하다.  

한 예로 제정 러시아의 찬란함을 고이 간직한 뾰뜨르대제 여름궁전과 겨울궁전의 자태는 한눈에 위엄 있고 풍요로운 권력의 표본이다. 크고 작은 방들에서 느낄 수 있는 궁중생활 단면들이 곧 황가의 역사요 내력일 것이다.
 화려하고 방탕한 것 같지만 깊이 내재되어 있는 예술적 기치에 대한 고감도를 느낄 수 있다. 보다 더 극진해 보인 것은 이런 예술적 인재를 키우기 위해 두 개의 에르미따쥐 박물관을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경향의, 여러 시대의, 여러 민족의 미술 작품들을 소수 예술계층에게만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실제 그들의 안목과 미래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예술성을 지닌 에르미따쥐 내부 장식들, 그 자체가 오늘날에 이르러서 귀중한 사료이며 인간 정신문화의 만상, 즉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무한 가치의 작품들이 소장된 셈이다.
 시대의 흐름을 통해 창조된 미술 분야는 모두 볼 수 있으며 덧없이 흘러갈 아름다움이 아니라 길이 지켜내야 할 예술이기에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니 그들의 이상에 준하는 예술가들은 거의 궁중을 거쳤고 그 예술가들이 직접 건축물을 설계 지휘하였다.
천장 벽화와 수많은 그림과 조각품들, 궁중가구는 물론 집기 배치에 이르기까지 실로 그 근원은 다방면의 종교의식과 왕정의 지원이 아닐까. 아마도 르네상스시대로부터  이어진 힘은 그들의 예술을 인정하고 누린 왕과 상류문화층인 귀족들이라 보여진다. 

 추사선생이 24살에 과거에 합격하고 동지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가 당대의 완원과 경학의 대가인 옹방강 두 분 스승을 만난 것이 최대의 행운이라고 했다. 추사의 서체는 평생 여러 번 바뀌었다. 젊어서는 그 당시 상징적이었던 동기창의 글씨를 따랐고, 중국에 다녀온 중년에는 옹방강의 글씨를 열심히 써서 너무 기름지고 두껍다는 흠이 있었다.
 그 이후 중국의 구양순을 비롯한 여러 대가들의 글을 익히고 만년에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유배지 제주도의 독특한 기후 풍토로 인한 시련과 고초가 추사에게 자기성찰을 위한 입에 쓴 약이 되었다. 호된 좌절 속에서 자신을 구현하여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 힘든 때에 이미 섭렵한 선대의 장점에다 스스로 일법을 이루게 되니 신이 내린 듯, 보다 독창적인 서체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문화는 결국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추사 김정희가 그리 뛰어날 수 있었던 것도 앞 시대의 선배들을 바탕으로 청나라와의 50년 이상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앞선 사람들의 시행착오까지 포함한 경험을 몸소 받아들이고 아울러 중국과도 인연이 있어 잦은 교류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
 의당, 그 시대의 문화가 제대로 흐르고 있어야 다양한 예술세계가 열릴 것은 빤한 이치다. 그러니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문화능력도 참으로 중요하다. 추사선생의 서체에 미친 당대의 선배들이라면 진나라 왕희지, 송나라의 소동파, 명나라의 동기창,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등이 있다.
지금 우리는 서예를 통하여 그분들이 그토록 심취하고 감탄했던 경지를 이해하기에도 벅차다. 충분히 마음으로부터 고요함을 내뿜어 붓글씨와 수묵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면 더러 답이 주어질 것이다. 대부분이 추사나 왕희지의 독보적 감각인 서체를 갖고자함이 아니란 의미다.
 그리보면 지금 세대는 모든 면에서 쉽고 행복하다뿐이랴. 선대가 의지력의 한계선상에서 이룩해 놓은 추사체를 필자는 이마저도 체험해보지 않은 채, 순수 사유에 의한 상상만으로 이리 사변을 늘어놓자니 실로 부끄럽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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