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1)
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1)
  • 조완호
  • 승인 2007.05.2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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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창조≫≪폐허≫≪장미촌≫≪백조≫≪금성≫
▲ 조완호     ©독서신문
새 출발을 위한 기대의 다짐, ≪폐허≫
 ≪폐허廢墟≫는 ≪창조≫ 출간 후, 일년 육 개월 후인 1920년 7월25일에 창간된 문학 동인지다.
제호題號 ‘폐허’는 독일의 시인 실러schiller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옛것은 멸滅하고 시대는 변하였다.
새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
멸망과 생성을 거듭하는 순환 속에서 새 생명이 발아되는 것임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폐허≫의 ‘폐허’를 단지 절망적 파산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인들이 정작 부각시키려 했던 것은 현재 보이는 현상계로서의 현실이 아니라, 그 안에서 움을 키우고 있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 즉 생성의 에너지인 것이었다. 
이 점은 창간호에 게재된 염상섭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폐허에 서서>라는 권두언에서 고민과 오뇌를 씹으면서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폐허로부터 찾자’고 했다.
 
일우一雨 일아一芽의 따뜻한 봄바람이 부활復活의 송영頌榮을 받드는 초춘初春의 날, 늦은 아침이었습니다. 아담 이브의 머리 속에 지智의 이삭이 북돋은 때로부터 입에 물었던 ‘재갈’ 자국 스러져가고 …중략… 그러하므로, 그 무리는 열 마음이 한 마음일 수가 있고, 백 발자취가 한 길을 밟을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 언덕에 앉았던 그네들은, 다문 입을 마침내 열지 않고 떼를 지어 팔 걷고 일어나니, 서로 기꺼하며 마주보는 그들이 안광眼光은 희망과 결심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또 염상섭은 이 글을 쓴 때로부터 40년이 지난 1960년 ≪사상계≫ 1월호에 ≪폐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폐허≫지가 내 수중에 없고 그 내용도 잊어서 알 수 없거니와, 그러나 그 서문 중에 ‘일우 일아’라는 말을 쓴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중략…
폐허에 앉아서 솟아오르는 햇발을 바라보며 신新문학을 위하여 신 개척, 신건설의 괭이질을 한다는 그러한 시적詩的 공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만세운동 직후의 현실감으로도 그러하였다. 3?1운동의 의의는 논외로 하고, 당장 잃은 것은 많고 얻은 것은 없다는 허탈감, 공허감이 또한 이러한 기분을 자아냈던 것이다.
기껏 얻은 것은 신 총독新總督의 ‘문화정치’라는 것으로 몇 개 안 되는 신문·잡지의 허가는 해놓고 갖은 수단으로 못 살게만 구는 꼴로 족히 짐작할 수 있었고, 민족운동도 길이 막혔고, 상권을 내어주거나 민족경제의 육성의 길을 터줄 리 없으니, ‘만세’ 후 거리거리에 나불던 주식회사 간판도 추풍낙엽같이 떨어져가는 등등 울분하고 신산한 환경… 폐허라는 기분이면서도 의지로서는 여기서 새 출발한다는 희망만은 가졌던 것이다.
 
창간호의 편집은 김억과 황석우黃錫禹가 했으나 광익서관廣益書館 고경상高敬相이 자금을 전담해 그가 편집 겸 발행인이 되어 ‘폐허사’라는 이름을 달고 출간되었다. 국판 130면으로 값은 45전이었으며, 발행 부수는 1,000부였다. 제2호는 다음해 1월에 발간했으나, 더 나오지 못하고 통권 2호로 종간될 수밖에 없었다.
창간 동인은 김억·김영환·김원조·김찬영·나혜석·남궁벽·민태원·염상섭·오상순·이병도·이혁로·황석우 12명이다.
≪폐허≫ 창간호에는 황석우·제월霽月·보성步星 등의 시와 김억의 역시譯詩 그리고 민태원의 소설이 게재되었고, 나머지는 수필 등으로 채웠다. ≪창조≫ 창간호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빈약한 인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있었던 일에 대해 ‘가정假定’이라는 말을 붙여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염상섭이 좀더 주도적으로 역할을 다하고 자신의 소설을 여기에 발표했더라면, ≪폐허≫에 대한 세엔들의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폐허≫ 창간호에 소설이 아닌 시 <법의法衣>를 그것도 ‘제월’이란 본명이 아닌 아호로 발표하는 소극적 태도를 취했다. 이 시는 요꼬하마 인쇄공장에서 쓴 작품으로 그가 발표한 유일한 시다.
그가 쓴 소설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1921년 ≪개벽≫ 8월호였고 작품은 <표본실의 청개구리>였다. 특성상 자연주의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해서 그는 김동인과 함께 우리 현대소설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초기의 염상섭은 좀처럼 문학에 전렴하지 않았다. 3·1 운동 때는 오사까大阪에서 동포 노동자들을 모아 시위를 주동하다 투옥되기도 했고, ≪폐허≫가 나올 무렵에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느라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었다.
염상섭의 호는 알려진 것처럼 ‘횡보橫步’다. 술을 좋아해 자주 즐겼는데, 취한 그의 걷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서울에서 출생해 보성학교普成學校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를 다니다 중퇴했다. 현진건玄鎭健과 함께 시대일보·매일신보 기자로 있으면서 평론을 주로 썼었다.
초기의 단편은 암울한 분위기의 자연주의적 경향이 짙은 작품들이었으나, 후기에는 치밀한 관찰과 서술로 채워진 사실주의적 경향을 띤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었다. <제야除夜> <해바라기> <두 파산破産> <조그만 일> 등이 이러한 성향의 작품으로 분류된다. 장편으로는 대표작인 <삼대三代>를 비롯하여 <이심二心> <모란꽃 필 때> <무화과> 등이 있다.
그의 삶과 문학은 다분히 민족적이고 전통적이었으며 일면 야인野人다운 면모를 보였었다. 이는 그가 당시의 국가 현실을 직시해 사실적인 문체로 기술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도 관심을 표명했는데, 특히 윤리적 측면을 강조했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사실주의문학의 확립·식민지적 현실의 부정·전통계승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체로 ≪폐허≫의 문학적 경향을 퇴폐주의頹廢主義라고 일괄하나, 모든 작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낭만주의·허무주의·상징주의·자연주의 등 다양한 모든 경향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일 수도 있다.
아호가 상아탑象牙塔인 황석우는 상징파의 시인으로 ≪폐허≫에 <석양은 꺼지다> 외 10편을 발표했었다. 그중에 <벽모碧毛의 묘猫>에서 뒷부분 괄호 안의 8행은 고양이가 시인의 영혼과 속삭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 터 되는
사막 위 숲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이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의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그는 일본의 상징파 시인 미끼 로후三木露風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 자연히 그의 시는 난해하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동인 중에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은 평생을 허무혼虛無魂의 사상으로 일관한 시인이었다. 어둡고 괴로웠던 심정을 그는 <시대고와 그 희생>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이다. 이 말은 우리 청년의 심장을 짜개는 듯한 아픈 소리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아니 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소리나, 이것을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다. 폐허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內的 외적外的 심적心的 물적物的의 모든 부족 결핍 공허 불평불만 울연鬱然 한숨 걱정 근심 슬픔 아픔 눈물 멸망과 사死의 제악諸惡이 쌓여 있다. 이 폐허 위에 설 때에 암흑과 사망은 흉악한 입을 크게 벌리고 우리를 삼켜버릴 듯한 감이 있다. 과시果是 폐허는 멸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것 같다.
 시대에 저항하듯 울부짖는 공초의 정열을 엿볼 수 있는 위의 글을 통해 다분히 퇴폐적인 그의 글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초몽草夢 남궁벽南宮璧은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남궁훈南宮熏의 외아들로, 전원에 기거하면서 자연을 예찬하다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夭折한 시인이다.
어머니시여,
선악일체善惡一切,
모든 물종物種의.
세계世界의 모든 물종物種―
지상地上에 모든 움직이는 자者,
하해河海에 잠기어 있는 자者,
공중空中에 날으는 자者,
모두 당신에게 양육養育되고,
당신의 애호愛護를 밧나이다.
그리고 최후最後에,
이 모든 물종物種의 시체屍體를,
당신의 넓은 마음에 껴안으시니이다.
  나는 당신을 기리나이다.
  당신은 진실로,
  만물萬物의 자모慈母이로소이다.
              ―<대지大地의 찬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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