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2)
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2)
  • 조완호
  • 승인 2007.05.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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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창조≫≪폐허≫≪장미촌≫≪백조≫≪금성≫
▲ 조완호     ©독서신문
남궁벽은 현대문학사에서 대표적인, 그리고 최초의 자연에 대한 예찬에 주력했던 시인이다. 그는 자연을 신비스러운 존재로 보아 거의 종교적 대상으로까지 격상시켜 노래했기 때문에 다분히 신앙信仰시와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의 자연은 대상과의 심리적 교류나 직관을 통해 얻어낸 절대적 주체로서의 자연이기보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지적 현시顯示물로서의 자연과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의 일제 치하의 현실 속에서 시대적 상황을 비관하여 자학적 퇴폐증세를 내보였던 다른 일부 시인들과는 달리 오히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로 자연과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던 시인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당시에 만연했던 한국적 낭만주의의 일반적 성향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인식하고, 그 자연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함께 언젠가는 일체의 고뇌가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 상태에로의 복귀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노자老子가 도道와 천지만물과의 관계를 ‘어머니’와 ‘자식’母子之間(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의 관계로 보고, 일상의 현실을 그 연연을 통해 초극하게 하기 위해 모든 감관感官을 막고 욕망을 제어하면 종신토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나, 이를 수용하여 완성코자 하면 구제할 길이 없을 것이라 하여 일상의 고뇌를 천지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로 귀환케 할 수 있는 경지를 체득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는 노자의 주장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자연’을 ‘모성母性’으로 치환하여 예찬하는 예는 서양의 시에서도 발견되는 성향인 만큼 그것을 반드시 동양적이라고만 주장할 수는 없으나, 완전한 자유의 구가를 위해 자연에로의 귀의를 도모하는 것은 구미歐美의 시와는 그 맥을 달리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그의 시에는 만물은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하는 일체관一體觀이 정신의 기저를 이루고 있음을 다음의 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풀, 녀름풀,
대대목代代木들의
이슬에 저진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삽붓삽붓 밟는다.
애인愛人의 입술에 입맛초는 맘으로,
정말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맛구나.
그래도 야속하다 하면
그러면 이러케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네圈를 돌아다니는 중생衆生이다.
그 영원의 역정歷程에서 닥드려 맛날 때에,
맛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네가 나를 삽븟 밟고 가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븟 밟아 주려무나.
                                 ―<풀>

‘풀’을 의인화하여, 그것에 자신의 감정을 유입시키는 수법으로 대상과의 일체감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서의 ‘풀’은 단순한 들꽃의 일종이 아니라, 영靈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육肉은 ‘영’과의 합일을 ‘애인愛人의 입술에 입을 맞추’듯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추진하면서, 맨발로 땅을 밟고 그에게 ‘삽븟 삽븟’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그것도 모자라 훗날 흙이 되어, 흙이 된 몸으로 그를 감싸 ‘북돋아’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그때 지금 내가 그러하듯 ‘나를 삽븟 밟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에서의 연緣이 내세來世에까지 이어지기를 자아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에서 이 시의 사상적 기저는 불가佛家의 ‘윤회輪廻’나 ‘인과연因果緣’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원적인 면에서 판단하면 장자莊子의 생명관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수필 <자연―오산 편신五山片信>은 자연을 예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이곳 정주定州에 온 뒤로 자연과 가장 밀접한 생활을 합니다. 자연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면, 도리어 좋을 듯합니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날로 성장해 갑니다. 마치 나무와 풀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여 가는 것처럼.
나는 날마다 일과日課를 삼아서 하학下學 후에는 반드시 학교 부근의 산야山野를 소요합니다. 오늘도 그래서 나왔다가 지금 어떤 언덕 위에 서 있는데, 안력眼力이 미치는 데까지는 산야 전답田畓이 한 빛으로 푸릅니다. 나는 푸른 세계에 싸여 있는 까닭으로 나의 호흡하는 공기까지도 푸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녁때에 어떤 뽕나무 밭가를 지나 노란즉, 저편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아해를 업고 왔습니다. 그 젊은 여자는 황토빛 같은 머리에 흙발을 하고 옵니다. 나는 그 여자의 등에 업힌 아희랑, 그 옆에 뽕나무 가지와 이상스럽게도 비교되어 보입니다. 자연이여요. 뽕나무 가지에 난 것이 자연이듯이, 젊은 여자의 등에 업힌 것도 자연이여요.
위의 수필 <자연―오산五山 편신片信>은 자연을 예찬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서岸曙 김억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비롯하여 베를렌?보들레르 등 주로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시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는 정주 오산학교 교사시절에는 김소월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편집후기’에서 퇴폐주의와는 정반대의 신생新生 재생再生을 위한 건설적인 의미로 젊은 세대들의 지향할 바를 역설하고 있다.
새 시대가 왔다. 새 사람의 부르짖음이 일어난다. 들어라, 여기에 한 부르짖음이 저기에 한 부르짖음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중략…
우리의 부르짖음은 어떠한 것과 같은 소리임을 모른다.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떠한 부르짖음이나 그 목숨이 오래고 먼 길의 튼튼한 힘을 빌어 다같이 손잡고 새 광경光景을 새 눈으로 보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거치른 ‘폐허’에 새싹을 심어서 새 꽃을 피우게 하고 한결같이 방향芳香을 맘껏 맡아보자는 것이다. 우리들은 결단코 황혼 하늘아래의 넘어가려는 별만 바라보며, 가이없는 추억의 심정을 가지고 무덤의 위에 서서 돌아오지 못할 옛날을 보려고 하여 애닯아 할 것이 아니고, 먼 지평地平위에 보이는 새 기록을 지을 일을 생각하여야 한다.
시대의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는 이러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절망에 빠져 덧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힘을 부추기는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염상섭이 ≪폐허≫에 이렇다 할 만한 작품 한 편 게재하지는 않았지만, 염상섭이 ≪폐허≫의 동인으로 참가했다는 사실은 ≪폐허≫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의미와 나름의 의의를 갖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한국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고,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한 이래, 평생을 두고 소설가로서의 일에만 주력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박종화는 그를 두고 ‘자연주의 문학의 거목巨木’이라고 추켜세운 적이 있다. 이러한 칭송에 대해, 횡보는 ≪사상계≫ 1962년 11월호 <문화회상기>에 다음과 같이 화답한 바 있다.
근자에 입수한 모 회사의 월간지를 들쳐보니, 권두에 내어 걸은 나의 소조小照를 설명한 월탄月灘 형의 ‘찬讚’ 아닌 소개문 가운데 나를 가리켜 ‘자연주의 문학의 거목’이라고 과찬한 일구一句가 있다.
송사리를 장상掌上에 놓고 고래라고 아니한 것만도 다행이거니와 웬 거목일꼬 자기 스스로 섶단에 쓸려 들어간 한 포기의 잡초라 하여 결코 겸사謙辭는 아니리라. 남이 나를 가리켜 자연주의 문학을 하였느니라 일컫고, 자기 역시 그런가보다고 여겨오기는 하였지마는 무어 큰 소리치고 나설 일은 못된다.
이런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단한 필력의 작가였던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는 일생동안 장편 27편, 단편 148편, 평론 100여 편, 잡문 246편 등을 합쳐 520편이 넘는 방대한 수의 그리고 양의 작품을 남겼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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