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3)
동인지同人誌를 통한 문학의 현대성 구축작업(3)
  • 조완호
  • 승인 2007.05.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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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창조≫≪폐허≫≪장미촌≫≪백조≫≪금성≫
▲ 조완호     ©독서신문
‘횡보 염상섭 탄생 100주년(1997)’을 맞아, 소설가 김원우는 <시류의 밖에서 시대를 꿰뚫은 작가정신, 염상섭>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횡보의 작품을 읽지 않고는 한국 현대소설의 위상을 감히 운운할 수 없고, 그의 섬세한 문체와 맛깔스런 우리말의 가락을 모르고서는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젊은 작가들조차 횡보의 소설이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망발을 내두르며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러고서도 한국 현대소설의 장래가 조금씩이나마 어떤 성치를 확보해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횡보와 횡보의 문학세계에 대한 관형어는 다음과 같이 다채롭다. 한국의 발자크, 두주불사의 호주가, 한국 근대소설의 아버지, 한국 문체의 완성자, 만연체 문장의 선구자, 우리말의 수집가, 탁월한 리얼리스트, 한국문단의 좌장 …,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우선 횡보를 발자크와 비교 대상으로 삼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발자크가 근대 사실주의의 대가였다면 횡보도 정확히 그러하다. 횡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주의적 시각으로 소설을 썼고,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이 탐미주의나 모더니즘에 경도되는 일종의 유행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발자크의 작품량이 방대함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횡보의 그것도 그에 못지않아서 장편소설만 무려 27편이나 썼다.
…중략…
가령 대개의 작가들이 지식인만을, 또는 뿌리 뽑힌 기층민중의 헐벗은 삶만을 시종일관 다루는 데 반해, 횡보는 당대 유수한 갑부들로부터 고학생·백수건달·형사·요부·무역회사 사원·이방인·공산주의자·미국인·독립운동가·암약꾼·하녀 등을 실감나게 빚어내고 있다. 그런 만큼 횡보의 소설은 20세기 한국 현실의 상세한 지적도이자 큼직한 전면도로서 손색이 없어서 거의 삼라만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작가의 소신과 끊임없는 정진이 그 시대를 그리고 그가 속한 국가나 민족에게 남기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정신적 자산이고 또한 끊임없이 재생산될 무한한 가치의 근원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4. 최초의 시 전문 동인지, ≪장미촌≫

≪장미촌薔薇村≫은 한국현대문학사상 최초의 시 전문 동인지로 ‘자유시의 선구’라는 부제를 달고, 1921년 5월 24일에 창간되었다.
≪폐허≫ 동인으로 편집을 맡았던 황석우가 편집을 책임졌고, 발행인은 ‘변영서邊永瑞’라고 되어 있으나 그의 본명은 ‘필링스’로 미국인 선교사다. 발행처는 서울 천연동 99번지에 소재한 ‘장미촌사’였고, 인쇄는 한성도서에서 했으며, 국판 24면으로 값은 20전이었다. 국전지 한 장이면 국판인 경우, 32면이 나오니 전지 한 장도 채 안 되는 얄팍한 두께로 창간호가 결국 종간호가 되었으니 단명短命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오면서 바로 사라진 책이나, 최초의 시 동인지라는 점에서 문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창간 동인은 황석우·번영로·허자영·박종화·박영희·오상순·신태악·정태신·이훈 등이며, 황석우가 주간을 맡았다.
단색으로 인쇄한 표지에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게재했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는 여기에 시 <장미촌의 항연>과 함께 창간사를 썼다.
극도로 곤비困憊한 인간의 영혼은 쉬지 않고 ‘정신의 은둔소隱遁所’를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식과 감각은 차차로 ‘볼 수 있는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세계’에, 즉 물질계에서 정신계에서 정신계에 나아가, 보지 못하던 형상形像에 목目을 당하며, 듣지 못하던 음향에 이耳를 징澄하며, 맡지 못하던 훈향薰香에 비鼻를 장張하는 것이다.
…중략…
하나의 정신계의 생명은 구원久遠하다. 정신계의 주민住民은 과거의 추억에 살며, 현재의 애愛에 살며, 미래의 예감에 산다.
젊은 날에 이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글을 쓴 수주는 40년이 지난 1960년 ≪사상계≫ 1월호에 ≪장미촌≫을 회고하는 글을 게재했었다.
…그 무렵 하여, 서울에는 삼위三位의 특이한 존재들이 출현하였다. 순위로 따져 그 한 분은 고故 남궁벽 군이었고, 다음은 6·25때 납북된 김억 군이고, 또 그 다음은 이제 말하려는 시 잡지 ≪장미촌≫의 주간이요 기자요 인쇄인이요 배달인이요 수금원이란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하던, 그 또한 금춘今春에 세상을 떠난 황석우 군이었다.
특이한 3존재란 다름이 아니고, 세 사람이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모조리 장발객長髮客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지금의 명동(그때 명치정)은 그만두고라도 본정(지금 충무로)과 종로 일대의 단연 이채異彩이었다. 길고 짜른 차이는 있을망정 어깨에 치렁거리지 않으면 재치 있게 옷깃에 달락말락하게, 이발료를 아끼지 않고 잘 다듬고 다니는 맵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특히 황군은 곱슬머리로, 말하자면 이즈음 소위 ‘파마 술’이 발달되기 전에 제물파마를 하고 다니어, 그 물결치는 두발의 관觀이 이채 중에도 이채이었다. 세 사람이… 최상급의 문화인이란 특수 사명을 띤 듯이 돌아와, 행티라면 실례이고 기세 자못 드높았다.
…중략…
하루는 돌연히 황군이 찾아와서, ≪장미촌≫이라는 시 잡지를 발간하려는데 시 한두 편을 기고하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모르게 나는 마음이 내키지를 아니하였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나는 사절을 하였으나, 악지가 셀대로 센 황군은 화증 아닌 짜증을 내는지라, 마음 약한 나로서는 하는 수 없이 ‘발간사’나 써 주마고 간신히 타협이 되었던 것이다.
발간사를 써 주마고 승낙은 하고서도 병적으로 다심多心한 나는, 번지를 알아두었던 덕택으로 서대문 안 그의 집을 찾아갔다. 6,7간 쯤 되는 납작한 집인데, 거래를 하고 들어서니 주인(황군)은 있으나 주부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안방 건너 방 마루(대청)에 가득 찬 것이 문학소녀들이었다.… 진풍경이라면 그 이상의 것이 없을 것을 나 혼자만이 누리었던 것이다.
당시 문학청년들의 모습이나 ≪장미촌≫을 엮는 잡지사의 형편을 가늠케 하는 글이다.
백철은 그의 『신문학사조사』에서 ≪폐허≫ ≪장미촌≫ ≪백조≫로 이어지는 그 시대의 문단 분위기며, 지식인들의 정신 자태姿態를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1920년 하반기 ≪폐허≫지의 창간을 전후한 시기와, 1923년경 ≪백조≫시대 이후까지도 포함하여 한국문단에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짙은 안개와 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퇴폐적인 경향은 문단에 한한 것이 아니고, 이 시대의 전 지식계급이 공통으로 걸린 하나의 세기병世紀病이었다. 이 시대의 지식인·예술가·문학가의 비관과 회의와 무기력은 막연한 정도를 넘어서 의식화한 정신의 자태였다. 나태는 그들의 생활습성이요, 자포자기는 그들의 정신적 타성으로 되었다. 그들은 우울을 껌과 같이 씹고 다니는 세기병의 중독자였던 것이다.
또 이광수는 1921년 ≪창조≫ 8월호에 실린 <문사文士와 수양>이라는 글에서, 그 시대 문인들의 퇴폐성을 지적하고 있다.
 
근래에는 문사라 하면, 학교를 졸업하지 말 것, 푸른 술 붉은 술에 탐닉할 것, 반드시 연애를 담談할 것, 의관衣冠을 야릇하게 할 것, 신경쇠약성 빈혈성 용모를 가질 것, 불규칙 불합리한 생활을 할 것 등의 속성을 가진 인물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발아기發芽期에 있는 우리 문단에는 데카당스의 망국 정조情調가 풍미하여 마치 아편 모양으로, 독주 모양으로, 청년 문사 자신과 및 순결한 독자인 청년 남녀의 정신을 미혹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풍경을 전하는 글들이다. 신교육을 받은 이들이 식민지라고 하는 암담한 현실에 부딪혀 얼마나 절망하고 또 그래서 방황 또는 방종할 수 없었던가를 감지케 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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