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은 이상(理想) 이상(以上)이었다
이상(李箱)은 이상(理想) 이상(以上)이었다
  • 김성희
  • 승인 2010.10.3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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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 탄생 1백주년_조영남의 李箱論
 
 
[독서신문 = 김성희 기자] 1910년 9월 23일 서울 통인동에서 중인계급의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난 천재시인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그가 태어난 지 1백주년을 맞은 올해 그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됐다. 하지만 한국 현대문학에서 초현실주의의 기수인 그의 작품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모호성과 상징성으로 우리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다.

이런 이상의 시를 ‘세계 최고의 시’라고 뚝 잘라 말하면서 그의 시를 해설한 조영남씨의 저서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가 발간됐다. 가수이자 미술가인 조영남씨는 젊은 시절부터 이상의 시에 매료돼 그를 너무 좋아했고, 이상 시의 해설서 발간을 자신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로 간직해 왔었다고 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독자들이 살아생전에 이상 시를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한다. 마치 음악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어보라는 것이나 미술에서 피카소 그림을 꼭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 이상을 현대시의 제왕이라 칭하는가

조영남씨는 이상을 ‘현대시의 제왕’이라고 단언하는 자신의 생각을 보들레르와 랭보, 엘리엇, 그리고 이상만큼이나 이상한 내용의 글을 썼다는 미국의 앨런포와 비교하면서 조목조목 뒷받침했다.
이상에게 ‘오감도’를 비롯한 몇몇 연작시가 있듯이 공교롭게도 이 4명에게도 이들을 대표하는 연작시가 있다. 보들레르에게는 ‘악의 꽃’, 랭보에게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엘리엇에게는 ‘황무지’, 엘런포에게는 ‘검은 고양이’가 그런 것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개별 시의 제목이 아니라 1백여 편이 넘게 실려 있는 시집 전체 이름이며 이 시집 안에 ‘악의 꽃’이란 표제가 붙은 19편의 연작시가 따로 붙어있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1편, 엘리엇의 ‘황무지’는 5편의 연작시로 돼 있다.
이상을 현대시의 제왕이라 설명한 내용을 간추려 봤다. 
‘악의 꽃’의 시작은 ‘축복’이고, ‘축복’ 바로 앞에는 ‘독자에게’라는 헌시가 따로 붙어있다. 보들레르 시집에서 제일 첫 장에 등장하는 매우 특별한 시라고 볼 수 있다. ‘독자에게’의 한 대목은 이렇다.
 
푸념, 과실, 죄업, 인색은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육체를 괴롭혀
거지들이나 진드기를 기르듯
우리는 사랑스러운 회한에게 먹이를 준다.
.........(중략)
늙은 창부의 순교의 유방에 입맞추며
가슴을 깨무는 가난한 탕아처럼
.........(중략)
긴 담뱃대를 피우며 단두대의 꿈을 꾼다.
독자여 그대는 이를 안다. 이 미묘한 괴물을
위선의 독자! 나의 동료, 나의 형제여!

 
보들레르의 시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외설스럽고 퇴폐스런 내용이 등장한다. 시가 발표될 당시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발악의 수준이다”라는 비판을 받으며 프랑스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지만 1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마무리 또한 유럽 시의 상투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긴 담뱃대를 피우며 단두대의 꿈을 꾼다”란 대목만이 재밌다. 마지막에는 단두대를 거론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느닷없이 애꿎은 독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위선의 독자여!” 당시로선 독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 수십 편이 거의 이런 식이다. 그저 악에 받치고 원한에 사무친 시인 같으며 매사가 불만과 짜증이다. 한 인간이 유난스럽게 삶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보들레르는 스스로를 ‘저주받은 시인’, ‘지구로 유배된 시인’, ‘파리에서 가장 우울한 시인’ 등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입장을 포장한 것이다. 시인은 스스로 얄팍한 감상에 휩싸여서는 안된다. 유치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상이 ‘봉별기’에서 말한 “스물세 살이오. 3월이오. 각혈이다” 쯤은 돼야 한다. ‘나는 스물세 살에 죽어가는 시인이오, 각혈하는 시인이오.’라고 이상 스스로 이렇게 자신을 포장했다면 실로 끔찍했을 것이다.
이제 이상의 시를 보자. ‘오감도’에서 ‘시제1호’의 앞부분만 갖고도 이상이 세계 최고의 시인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길목이 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우선 다른 시인들은 시다운 시, 시를 닮은 시를 썼다. 정지용이나 김기림과 비슷한 시를 썼으니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멋지고 우아하다. 그러나 이상은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시를 닮지 않았다. 멋지거나 우아하지도 않다. 얼핏 봐서는 이해가 안 된다. 괴상하고 우스꽝스럽다.
1931년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했을 때 사방에서 비난이 들끓었다. 재밌는 것은 그때 이상을 못마땅하게 평가했던 많은 평론가들이 이상의 재능은 높이 사면서도 문학의 완성도에서 좀 떨어지는 편이라고 느슨한 평을 써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평론가들의 예견과 달리 이상은 현재 최고의 시인으로 남게 됐다.
젊은 시절, 이상의 시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순간 숨이 멈추는 것을 느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가 봐도 이상은 완벽한 글쟁이였다. 소설과 시는 물론 산문, 수필 심지어 서한문까지 완벽한 문자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날개’ 같은 초명품 소설과 ‘권태’ 같은 명수필을 나는 다른 데서 만난 적이 없다.
 
통일성과 일관성의 정수,
이상의 작품 세계


이상이 써놓으면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현대미술에서 가장 요구되는 통일성과 일관성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세계 시문학 제왕으로 올려놓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위선의 독자’라는 꾸지람을 들을지라도 나는 단언한다. 통일성과 일관성만을 따지자면 이상만한 인물이 없다.
이렇게 몰아가는 내 논리를 궤변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시의 골격은 궤변이다. 비교 분석을 위해 궤변을 동원했다고 질타해도 난 부끄럽지 않다. 이상이 거느린 13명의 아해는 보들레르의 ‘축복’과 랭보의 ‘나쁜혈통’, 엘리엇의 ‘죽은 자의 매장’, 포의 ‘애너벨 리’의 최대공약수이거나 최소공배수다. 즉, 이상의 초현실주의 시 ‘오감도’ 하나가 다른 시인들의 시까지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 제공: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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