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존재로서 의미를 재창조한 인간
읽는 존재로서 의미를 재창조한 인간
  • 김성희
  • 승인 2010.10.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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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다양한 이야기<上>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6천 년 전이라고 합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가 발상지였습니다. 그럼, 책도 그때 거기서 시작된 것인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정의를 어떤 목적과 의미를 담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책의 역사는 훨씬 이전,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2만 몇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겁니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 김성희 기자] 인류 역사는 사람이 무엇보다 ‘읽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태초에 사람은 하늘의 별을 통해 미래를 읽었고, 천둥과 번개, 홍수와 가뭄에서 신의 뜻을 읽었으며, 서로의 얼굴에서 친구와 적을 읽고, 서로 다른 손금에서 서로 다른 운명을 읽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자연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의미들로 세계를 재창조하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책에 다가갑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들 중 하나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라스코와 알타미라에 남긴 동굴벽화입니다. 거대한 동굴로 들어서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사실적인 그림들이 벽을 따라 펼쳐집니다. 이어진 동굴 복도와 방마다 서로 다른 그림들이 펼쳐지고, 그림은 동굴 맨 안쪽 작은 방에 이르러 죽은 듯 누워 있는 사람으로 끝을 맺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그림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으며, 수십 컷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동굴 전체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거대한 책은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이야기’를 짓고 읽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 각지에 남아 있는 바위그림들은 이런 문화가 꽤 오랜 시간 여러 지역에서 발달했다는 증거입니다.
 
돌, 흙, 가죽, 잎사귀… 만물이 책의 형식

문자 발명은 본격적인 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기원전 3천여 년 전,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갈대 펜으로 각종 정보와 지식을 기록했습니다. ‘도서관의 왕’ 아슈르바니팔 2세가 니네베에 세운 도서관에는 이런 점토판이 50만 점이나 소장돼 있다고 합니다. 점토판은 불에 강한 대신 물에 약하고 무거우며 많은 정보를 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집트에서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파피루스에 썼고, 그 후 파피루스는 책의 주재료가 됐습니다. 하지만 점토판과 거기서 발전한 밀랍판은 필기도구로서 꽤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영어의 ‘book’은 밀랍판 재료인 너도밤나무를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boc’에서 유래했습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문명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파피루스 잎사귀 끝을 한 장씩 풀칠하고 나무막대에 말아 두루마리 책을 만들었고, 이 책들에 찌지를 달아 책장에 보관했습니다. 한편중국, 이슬람, 아메리카 등에서도 파피루스 같은 식물 잎을 기록지로 썼는데, 지역 조건에 따라 야자수 잎, 대마, 아마떼 같은 식물들이 이용됐습니다.

그런데 파피루스 책은 영구성과 보존성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보완해 준 것이 양피지입니다. 동물 가죽은 가공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어서 편리했기 때문에 근대에 들어 종이가 일반화될 때까지 양피지는 책 재료로 널리 애용됐습니다.
종이를 처음 개발한 것은 중국입니다. 중국에서는 대나무 껍질을 이용한 죽간과 명주를 이용한 두루마리 책이 발전했지만, 비용과 편리성이 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나무껍질과 넝마조각, 인피섬유를 혼합해 만든 원시적인 종이였습니다. 기원전 140년경부터 이런 초기 형태의 종이가 개발돼, 발전을 거듭하면서 질기고 쓰기 편한 종이가 나왔습니다.

이슬람 왕조는 일찌감치 중국 제지술을 받아들여 최고의 종이로 꼽히는 다마스커스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유럽은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한때 종이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종이의 편리성은 이런 적개심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종이는 인쇄술 혁명의 한 축을 담당하며 책의 전성기를 일구었습니다.

종이는 여러모로 획기적인 재료지만, 불과 물에 약하다는 단점은 책의 영구보존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한계로 여겨졌습니다. 550년 중국 후난성 팡샨사에 만들어진 돌 도서관은 영원히 살아 있는 책, 불과 물에도 죽지 않는 책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보여주는데, 팡샨사 돌기둥과 동굴벽에 새겨진 420만 자의 석경(돌에 새겨 만든 경전)은 중국어 불경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평가될 만큼 완벽합니다.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 돌 도서관에서 경전을 탁본하며 종교적인 가르침을 배우고 전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주위의 모든 재료를 이용해 책을 만들었습니다. 돌, 흙, 가죽, 잎사귀, 바위, 넝마, 비단, 종이 등 온갖 것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 그것은 불멸을 향한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며, 인류의 역사는 또한 책의 역사인 것입니다.
 

 
 
책과 도서관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상상의 원천

“그동안 나는 어디에서나 평안을 찾았지만, 책이 있는 한쪽 구석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1379~1471)가 남긴 말입니다. 켐피스뿐만 아니라 인류는 책과 도서관에서 영혼의 안식을 찾으려 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도서관을 ‘영혼의 치유소’라고 불렀고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천국은 도서관과 같으리라”고 했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책의 영혼이 잠자는 ‘책 무덤’도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회당 안에 수명이 다한 문서와 책을 묻는 곳인 ‘게니자’라는 것이 있었는데, 카이로에 있던 게니자는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책을 던져 넣게 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1890년 회당 수리를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무려 천 년 동안 쌓인 책들이 썩고 있었답니다. 이슬람교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는데, 파키스탄 퀘타 근처 칠탄 산 동굴지대에는 약 5천 권의 코란이 하얀 수의를 입고 묻혀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은 마음의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상상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인도의 『베다』경전에서는 창조주가 스스로 창조되기 전부터 우주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최고의 책 상상가라고 할 수 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바벨의 도서관』이란 작품에서 우주를 “육모꼴 열람실”이 이어지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도서관으로 상상했습니다. 쥘 베른의 ‘해저 도서관’(『해저 2만 리』), 움베르토 에코의 미로 같은 수도원 도서관(『장미의 이름』) 역시 문학적 상상력이 발휘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자료제공 :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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