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성
  • 권구현 기자
  • 승인 2007.05.2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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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     © 독서신문
  1636년 음력 12월. 청은 10만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해 왔다. 이른바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에 다시금 찾아온 외적의 침략에 조선은 풍랑을 만난 조각배와 같았다.
 조선 조정은 척화를 주장하며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한다, 하지만 인조는 강화도행은 이미 길이 끊겨 실패하고, 황망히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한다. 

 조선의 갈등은 죽음 속에 자존이 있고 삶 속에 치욕이 있으니,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라는 명분 아래서 시작된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척화파와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의 대립은 47일 동안 칼날보다 서슬 푸르게 맞선다. 이러한 갈팡질팡한 정국 속에서 결국은 모질도록 추운 겨울, 조선의 국왕 인조는 47일만에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의 칸에게 항복을 한다. 인조는 항복의 의례인 삼배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가 진행된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의 작가 김훈이 3년 만에 발표한 『남한산성』의 배경는 명확하다. 병자호란 그리고 남한산성이라는 그 아수라와 같았던 순간을 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기에 역사 소설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역사적 사실 보다는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작가가 책 안에서 밝히고 있듯 ‘자존과 치욕은 다르지 않았다’ 라는 말은 이러한 물음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자존과 치욕의 대립은 소설 초기에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수장, 김상헌과 최명길의 갈등으로 시작된다. 청군이 포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정의 대신들은 서로의 의견들만 내세우며 ‘말’ 로만 싸우고 있다. 조선이 처해있던 모습, 결국 청나라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밑거름을 보여주는듯 하다. 

 작은 당파 싸움에서 시작했던 ‘자존’과 ‘치욕’의 대립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좀 더 심화되고 있다. 송파나루의 늙은 사공과 얼어붙은 강을 건너려는 김상헌의 대화는 갈등의 확장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청병이 곧 들이닥친다는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는 김상헌의 물음에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 볼까 한다”는 사공의 말은 ‘자존’이란 민초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그저 사는 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김상헌은 강을 건넌 뒤 사공의 목을 베어버린다.

 ‘사공은 풀이 시들듯 천천히 쓰러졌다’ 고 표현되는 사공의 죽음은 결국 삶이란 것은 죽음으로 끝이라는 것을 나타낸게 아니었을까? 치욕이라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치욕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다는 것은 더 커다란 자존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자존을 지키기위한 죽음은 결국 풀이 시들듯 천천히 쓰러져 바람에 날아가버리는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훈의 특유의 감정을 배제한 문체는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몰고 있다. 남한산성이 처한 상황이 풍전등화의 순간이라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47일간 남한산성 속의 사람들을 괴롭혔단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평상시 우리의 머리 속을 맴돌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해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도, 또한 답을 명확하게 얻을 수도 없는 우문이지만 김훈이 그리고 있는 민초들의 삶을 볼 때, 우리의 삶 또한 그다지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하루를 상황 변하는대로, 그리고 자기 입장에서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것, 우리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 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작은 해답이 아닐까 싶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펴냄 / 383쪽 / 11,000원
 
읽고 생각하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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