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가시울타리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 신금자
  • 승인 2007.05.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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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 신금자     © 독서신문
 종일 비가 오락가락 비거스렁이가 일었다.
그래도 조랑말은 유순한 눈을 껌벅이며 풀을 뜯고, 멀리 구릉 평야지역에 불쑥 솟아오른 오름 아래로 설록차 재배지 차밭이 펼쳐졌다. 엷은 바람이 지나다니는 너른 차밭은 사람을 참 어질게 한다. 찻잎을 따서 쪄 푸른 향을 고르고 덖듯 고른 숨소리를 권한다. 마침내 귤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슬포에 다다랐지만 점점 서귀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제주도는 조선조 500년 동안 1목 2현을 두었다. 한라산 북쪽이 제주목이었으며 한라산 남쪽은 둘로 나누어 서쪽이 대정현, 동쪽이 정이현이었다. 모슬포는 옛 대정현이다. 옛 대정현의 모슬포를 찾은 것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유배지와 유적을 살펴보고 싶었다. 서예는 물론, 시, 서화, 금석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선생이 9년간(1840~1848)의 귀양살이를 한 곳이다.
 추사는 당시 안동김씨의 정쟁에 휘말려 자행된 옥사를 10년 후인 1840년 다시 들추어내 그를 연루시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인 우의정 조인영의 주청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멀고 험한 대정의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가두어라’ 는 명을 받고 제주에 위리안치 되었다.
 유배는 성격에 따라 격리가 목적인 환도(還徒) 부처(付處), 안치(安置)가 있다. 환도는 고향에서 천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이며 부처는 정상을 참작, 배소로 가던 중 한 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고 안치는 유배인의 거주를 일정한 장소에 제한시키는 것이다.
 
 안치는 다시 본향안치(고향에 유배), 주군안치(일정한 지방에 안치), 절도안치(먼 섬에 유폐시키는 것), 위리안치(집 주위에 가시덤불을 쌓고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로 나뉜다. 이 중 가장 힘든 ‘위리안치’를 추사선생에게 내렸다. 그러나 그가 제주도 귀양살이 집에 도착하여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가시울타리를 치는 일은 이 집터의 모양에 따라서 하였다네. 마당과 뜰 사이에 걸어다니고 밥 먹고 할 수 있으니 거처하는 곳은 내 분수에 지나치다 하겠네.” 라고 적고 있다. 의연한 그가 그대로 읽히는 대목이다. 똑같이 귀양살이를 했지만 다산 정약용은 ‘주군안치’로 강진에서 나름대로 자유로웠다. 강진 땅의 어디든 오갈 수 있었다. 그래서 다산은 세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추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추사는 들판의 초목을 내다보며 외로운 심경을 위로하고 특별히 수선화를 가꾸며 남다른 소회를 하였다. 예전에 아버지 근무처에 인사를 갔다가 수선화 한 뿌리를 받아왔는데 수선화를 화분에 심어 양수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한테 보냈다. 추사보다 25살 연배인 다산이 그것을 받고 "평양에서 내 친구 김정희가 수선화를 보내줬는데 그 화분이 고려자기였다고 자랑했다. 그러다 추사가 제주에 귀양을 가서 보니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 말과 소가 먹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사물이 장소를 잘못 만나면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를 여기 와서 보는구나" 라는 시를 썼다. 그래서 추사선생이 귀양오기 전과 후의 수선화에 대한 시의 의미가 많이 다르다.
 또 하나, 추사에 관한 이야기를 살피다보면 수많은 편지글이 나온다. 추사는 기회만 있으면 편지를 썼다. 구구절절 애틋한 상황이다. 어린 나이에 가까운 사람들과 사별을 하는 아픔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름을 떨치기까지 서책과 위무를 아끼지 않은 제자, 스승, 친구, 초의선사 그리고 제주의 귀양터 주민들, 현모양처였던 이씨부인 등등, 한결같이 편지를 쓰게 한 사람들이다.
 
 이 교류와 정성이 보태져서 귀양 중에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를 잊지 않고 찾아온 역관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황량한 벌판에 이지러진 집 한 채, 허리가 굽었지만 푸름을 잃지 않은 노송, 곧게 자란 세 그루의 잣나무에 공자님의 말씀 (歲寒然後 松柏之後凋也)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까지 푸르다는 것을 안다' 라는 구절과  ‘네 마음이 그렇구나. 아, 쓸쓸한 마음이여.’ 하고 자신의 심중을 내비친 이것이 추사 김정희가 평생 추구한 송백의 기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책의 필자가 서두에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고 했다. 그렇다. 실제 그를 흠모하며 절실히 느낀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리고 끝없이 빠져들어갈 뿐이다.  추사의 그림같은 글씨, 글씨같은 그림, 거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한자를 통달하고 상형문자를 꿰뚫은 그 한 자 한 자마다 무한한 자유를 주되, 전체를 벗어나지 않는 강약의 힘이 넋이라도 앗아갈 태세다. 마치 모진 대정의 비바람에 씻긴 먹돌을 굴린 듯한 추사체, 그 ‘괘’를 위해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마침내 붓 한 자루로 대륙의 콧대를 꺾어버리자 규격화된 글씨만을 고집하던 학자들이 충격을 받았다. 너도나도 추사 글씨 받기를 간청했다. 선(禪)의 경지를 탐했다.
 
 바야흐로 독특한 문화와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에 비가 내린다. 대정현성 성벽 위로 다시 쌓은 성가퀴 밑 먹돌에 검은 눈물로 숭숭 구멍을 내고 있다. 100년 전 육지로부터 탄압과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좌절과 패배감이 서렸던 만큼 학문의 대가들이 뿌린 인문학의 전이도 지대하다 하겠다.

 바깥채 담벼락을 둘러친 탱자나무 울타리는 올봄 새로 내민 무른 가시임에도 가슴이 저릿하다. 울안에 서서 반경을 둘러보니 멀리 산방산과 그 옆으로 봉긋한 오름에 자주 머물렀을 추사선생의 시선이 촉촉하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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