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자
뜨거운 여자
  • 김혜식
  • 승인 2007.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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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수필가인 이유식 교수님의 수필집‘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를 읽고

▲ 김혜식(수필가)     © 독서신문
가슴 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친다. 온몸이 뜨겁게 달구어진다. 취기가 오른 듯 얼굴도 붉게 상기 된다. 입안마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겉옷을 훌훌 벗었다. 하지만 온몸을 달구는 열기는 좀체 식지 않았다. 그 뜨거움에 좌불안석을 못할 즈음 갑자기 거짓말처럼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종전의 그 뜨거움은 간곳없고 등줄기에 스치는 서늘함에 오싹 소름마저 돋는다.

 요즘 들어 내 몸이 쉽사리 달구어지는가 하면 또 금세 식기 예사이다. 행여 뜨겁게 달구어질 때 메마른 가슴에 불이라도 붙을까 두렵다. 젊은 날에 비해 이즈막에 붙는 불은 온몸을 전소시킬 요소가 다분히 내재돼 예방이 최우선이다. 무엇보다  젊음을 상실한 심리적 불안감에 연유된 행동이기에 이성적인 자제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허나 안심할 일이다. 어느 분의 우스개 말마따나 이마에 돈 붙여 길거리에 서 있으면 뭇남자들이 이마에 붙은 돈 만 떼어 갈 내 나이가 아니던가. 여성으로서 매력을 잃었다는 의미이므로  참으로 서글프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거울을 보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옷 색깔도 화려해졌다. 전에 없이 몸치장할 장신구에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잃어버린 청춘을 되돌리고 싶은 욕심이 부쩍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문득문득 마음이 공허할 때가 많다.

 흔히 갱년기를 완경기라고도 표현한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됐든 난 지금의 이 갱년기 증상이 마냥 견디기 힘들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만 세월의 무상함을 한스럽게 느끼는 것일까. 아닌듯 하다. 남성도 흐르는 세월 앞엔 그 감각을 느끼는 소회는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 훌륭한 한권의 책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평론가이며 수필가인 이유식 전 배화여대 교수님이 출간한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라는 에세이집이 그것 이다. 그 책 속엔 ‘나이와 세월 감각’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유식 교수님은 그 글에서 나이에 따라 세월 감각이 다르다고 피력 하였다. 이 작품은 1998년에 회갑을 맞은 후 쓴 글 인성 싶다. 교수님은 50세 이전엔 세월이 빠름을 인식 못하였으나 60세를 훌쩍 넘고 보니 더욱 연세 드는 것이 싫어졌다고 토로 하였다. 어느 땐 가는 세월을 붙잡아 두고 싶은 안간힘인양 여학생들에게 ‘젊은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너스레도 떨었다고 고백 했다. 50세는 그나마 아직은 싱싱함이 남아있는 나이이며 한편 살아온 인생의 어떤 결과가 가시화된 현재완료형 시제라고도 하였다.

 이 내용을 읽고 새삼 자신을 되돌아본다. 공자는 50세를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하였다. 나는 과연 하늘의 뜻을 제대로 따르며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자신이기에 불현듯 15세 지학(志學)의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심을 부려본다. 질풍노도(疾風怒濤)같은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삶의 지향점을 순수에 놓고 살아보련다.  그러나 그 또한 헛된 욕심, 이미 때는 늦었지 않았는가. 두 번 다시 그 젊은 날로 되돌아갈 순 없다. 이런 후회는 나만의 생각은 아닌가보다. 누구나 삶을 살며 수없이 시행착오도 저지르고 오류도 범하기에 이유식 교수님도 인생은 도박이라고 일렀다.
 하긴 인생의 불확실한 패를 미리 안다면 아예 살맛이 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결과를 미리 점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만년 청년 같던 이유식 교수님도 이제 어느덧 고희를 맞았다. 교수님은 지난날 나이에 따라 나이를 가불한 대가로 조숙, 성숙, 원숙이란 말을 남에게 들었다고 하였다. 이젠 노숙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왕이면 남들에게 가슴이 늘 따뜻한, 뜨거운  여자로 기억되었음 하는 바람을 감히 가져본다.

읽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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