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우동 한 그릇
  • 이병헌
  • 승인 2007.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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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시인 · 소설가 , 임성중 교사)

▲ 이병헌     ©독서신문
봄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는 날 오후 서울행을 택한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건조의 터널 속에 갇힌 대지에 내리는 빗기처럼 가슴속 무미건조함을 털어 내려는 동작에서 출발된 것이었다. 오후 늦게 대학로에 도착해서 연극을 무엇을 볼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포스터 하나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우동 한 그릇'이었다. 이미 책으로 읽어보아서 그 감동이 진하게 남아있었는데 연극을 통해서 볼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원작자의 의도를 표현하는 방법은 연출가의 의도를 따라가게 되는데 이번 작품 역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졌고 다른 연극은 이미 나의 머리 속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학로를 걸으면서 늦게 나타난 햇빛을 느끼며 극단 김동수컴퍼니의 김동수 플레이 하우스로 향했다. 사실 서울에 올라와서 그 곳까지 찾아가는 것도 촌사람인 나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약을 먼저 해야 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멀리서 건물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고 드디어 예약을 하니 두 시간 여분이 나에게 주어졌다. 

 공연 시작 10분전에 극장으로 들어가니 도우미들이 웃으면서 맞아준다. 좌석까지 찾아 줘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마음을 담았다. 무대에는 작은 우동집이 그대로 설치되어있고 왼쪽에는 주방이 가운데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 있고 정면에는 문이 있어 그 곳으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우동 한 그릇'은 12월 손님이 북적대는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을 찾는 가난한 모자와 한 그릇으로 세 사람 분량을 채우는 이 손님들을 위해 언제나 자리를 마련하는 마음 넉넉한 우동 가게 주인의 감동어린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는 해마다 12월 마지막날이 되면 손님들로 붐비는데 문을 닫을 무렵 그곳에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가 들어와서 단 한 그릇의 우동을 시킨다. 어머니가 세 명이 왔는데 한 그릇을 시켜도 되느냐는 말에 주인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으로 그들에게 우동 한 그릇을 준다. 물론 1.5인분을 담아서 주는데 그 후에도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세 모자는 그 곳을 찾고, 다정하고 따뜻한 그들의 모습에 주인은 보이지 않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가격이 올랐지만 12월 마지막날 그들이 나타나면 처음가격표로 바꿔놓고 그들을  기다리는 인간미가 흐르는 연극이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12월 마지막날, 주인은 우동을 먹으러 올 세 모자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몇 년이 지나도 그들은 '북해정'에 다시 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들 모자를 기다리는 주인은 그들의 자리를 언제나 비워뒀고 이러한 사연은 단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저 추억으로만 세 모자에 대한 기억이 남겨질 무렵, 그들은 다시 우동 집에 나타난다.
두 아들은 의사가 되고 은행원이 된 장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엄마는 제법 말쑥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이제 그들은 한 그릇의 우동이 아닌, 떳떳하게 세 그릇의 우동을 시킨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이 베풀어주었던 따뜻한 배려와 마음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북해정'의 섣달 그믐은 훈훈함으로 젖어간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라이브무대로 음악을 담당하는 기획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중간 중간에 소설을 읽는 듯 하다가 연극으로 돌아가 ‘소설과 연극’의 혼합된 형태인데 책을 읽다가 연극을 보고 연극을 보다가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감동으로 내 마음은 서울에서 봄을 담았고 촉촉함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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