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순례-1<노작 홍사용 문학관>
삭막한 신도시를 달래는 문학의 위안
문학관 순례-1<노작 홍사용 문학관>
삭막한 신도시를 달래는 문학의 위안
  • 독서신문
  • 승인 2010.07.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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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작 홍사용 시인     © 독서신문
[독서신문] 허대능 기자 = 경기도 화성시의 동탄신도시는 이름 그대로 신개발 지역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던 전답지에 마천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불야성을 이룬 상가지역에는 밤새 주객들의 고성방가가 그치지 않는다. 삭막하고 답답하다.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시인은 동탄의 이런 미래를 내다보았는가 보다. 그래서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 묻히고, 다시 문학관으로 부활했는지 모르겠다. 

 ‘노작 홍사용 문학관’은 동탄신도시에 있다. 올해 3월 개관했다. 홍사용의 묘소가 있는 반석산 자락에 앉아 신도시의 가장 번화한 상가지역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다. 홍사용 문학관은 그래서 더 빛난다. 홍사용 문학관은 삭막하고 갈증나는 신도시를 달래는 한 줄기 정신적 위안의 빛이자 감로수다.

홍사용(1900~1947)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낭만파 문학인이다. 그의 장르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을 아우른다. 1922년 문예지 백조를 창간한 이래 ‘봄은 가더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30여 편의 시를 남겼다. 1923년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면서 연극연출로 발을 넓혔다. 남긴 희곡도 7편에 이른다.

노작 홍사용 문학관의 이덕규(49·시인) 관장은 홍사용의 호 노작을 ‘이슬에 젖은 참새’로 풀이했다. “새벽까지 밤새 고민하며 이슬 젖은 채 돌 위에 앉아있는 초라한 참새”라는 것이다. 이 관장은 “홍사용의 삶이 노작이란 호에 딱 어울린다”며 “병든 참새”로 새겨도 좋다고 했다.

 
▲ 노작 홍사용 문학관 전경     © 독서신문

 

홍사용은 남양홍씨 가문의 300석지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 김옥균전을 희곡으로 쓰라는 일제 총독부의 강압을 거부하며 절필 선언할 때까지 한국 문단의 낭만파 기수로 활동했다. 절필 후에는 전국을 떠돌며 민요를 채집하다 폐결핵으로 결코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다.

그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제목이 거창하다. 하지만 그 왕은 권력을 거머쥔 왕이 아니다. 두들겨 맞고 조롱당하며 어머니를 찾는 연약한 어린 왕이다. 어쩌면 여기에는 일제의 강점 하에 있는 민족의 한과 울분이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이 관장은 “총독부의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작의 문학에서 대일저항의 냄새를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노작이 자신의 문학에 매우 엄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설적 화법으로 정치적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어에서 자연스럽게 대일저항 정신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노작 홍사용 시인의 작품과 사진이 걸린 시문     © 독서신문



홍사용은 한량기질이 강했다고 한다. 문학인에 집안도 부유했으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 박종화, 정백, 이광수, 조지훈 등과 절친했고 술과 관련된 일화도 많이 남겼다. 재정난에 빠진 토월회의 빚을 대리 청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가난한 죽음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관장은 “그의 가산탕진 원인은 독립운동 자금 지원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홍사용을 “고고하고 깨끗했던 분”이라며 “그의 인품은 곧 화성시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이 한 판의 연극이라면 낭만주의자에게 재산은 웃기는 물건이리라. 홍사용은 가산탕진 원인을 운운하는 뒷사람들의 말을 안주 삼아 저세상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홍사용 문학관은 도시에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다. 외진 곳에 자리한 여느 문학관들과 달리 시민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다. 문학의 생활화를 위한 지리적 여건을 갖춘 셈이다.

문학관은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운영은 연간 회비 3만원의 회원제로 한다. 올해만 문예창작교실, 문인과 함께 떠나는 국내외 문학체험, 유명문인특강, 청소년 문학캠프, 노작 단편영화 상영 등 10여 가지 프로그램을 계획, 실시하고 있다. 
 
 
▲ 노작 홍사용 시인의 묘소와 시비     © 독서신문



문학관은 현대 단편영화 상영과 함께 감독을 초대해 관객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이 관장은 “회원들의 반응이 좋아 방영 때마다 40여 명이 온다”며 “방영 후 대화가 2~3시간씩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문학관은 무엇보다 책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동화읽기 등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는 것도 문학관의 기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관을 찾는 회원은 주로 가정주부라고 한다. 이 관장은 “책 읽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부의 역할이 크다”며 “아이보다 먼저 엄마가 동화를 읽도록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장이 역점을 두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한국의 고전소설 읽기다. 최근의 텍스트는 18세기 영·정조 시대 실학자인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의 소품집이다.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번역 출간한 책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인 신동옥씨가 직접 강의한다. 이 관장은 “당시 소설의 엄청난 묘사력과 문체 덕분에 청중에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그는 “고전의 텍스트는 우리 역사에도 자료가 풍부하다”며 “중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 것을 더 많이 발굴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 위치한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문     © 독서신문



문학관은 목사를 초청해 새로운 각도의 성경읽기도 하고 있다. 이 관장은 “앞으로 스님을 초청해 불경읽기와 함께 목사-스님의 공동강의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낭만파의 흐름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홍사용. 그는 한 세기를 건너 뛴 오늘,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서 ‘젊은 친구’ 이덕규 시인을 만나 부활했다. 그리고 콘크리트 더미의 동탄신도시에 문학의 향기를 조용히 전하고 있다.
 

* 노작 홍사용 문학관 홈페이지 : http://www.nojak.or.kr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 사 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말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무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벌거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 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날 밤, 맨재텀이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은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뭇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너 산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당 우물로 가자고 지금길로 들어서며는 찔레나무 가시 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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