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짓기 대회
어느 글짓기 대회
  • 이병헌
  • 승인 2005.11.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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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시인 · 소설가 , 임성중 교사)
 며칠 전 예산 문화원에서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 예산지부에서 주관하는 추사 글짓기대회의 진행과 심사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날 가을 하늘의 맑음과 초록빛을 내는 어린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준비한 원고지를 나눠주고 간단한 의식행사가 있은 후에 여기 저기로 흩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제는 초등부는 '얼굴'과 '달' 중등부는 '길'과 '소나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초등부의 '달'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중등부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글짓기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260여명이 되었다.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서 자신들이 선택한 장르의 글을 써 내려갔는데 글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재미가 있었다. 어떤 학생은 작은 책상을 가지고 와서 잔디밭에 올려놓고 글을 쓰고 있었고, 전날 비가 와서 잔디가 젖었을까봐 준비해준 비닐 위에서 뒹굴며 놀기부터 하기도 했다. 소풍을 나온 것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김밥을 먹는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 시인이나 수필가가 된 것처럼 사색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선생님들과 함께 온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글을 쓰는 것을 지켜보며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알려주려는 모습을 보며 진행 요원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이어졌다. 사실 글짓기 대회에서는 데는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척 하면서 밀착 감시를 했다. 올해부터 문협 예산지부에서 주관을 하게 되었는데 학부모들은 우리들의 적극적인 감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어떤 학부모님은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을 위해서 커피와 생강차를 준비한 것이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도중에 행정기관장들과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의 방문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아이들이 글을 쓰는 흐름을 끊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실적위주의 행정에서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글짓기대회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처음 우리들의 생각은 12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놀면서 쓰고 쓰면서 놀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대회에 참석해서 하루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이 더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회가 끝난 후 아이들이 글을 썼던 장소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정리한 다음에 추사고택을 벗어났다.
  다음날 오후에 소집된 심사위원회에서는 초등학교와 중등부의 작품을 읽으며 심사를 했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원고지 사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주제에서 벗어난 글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학생의 경우에 글을 정말 잘 써서 감탄을 하면서 읽었는데 그 글이 주어진 주제와 완전히 벗어나 상을 받을 수 없게되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리 글을 연습장에 써 온 후에 주제와 관계없이 옮겨 쓴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작년에 비해 운문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지만 산문은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아름다운 눈망울에서 뱉어내는 언어는 정말로 우리들이 읽어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을 보면 반드시 많은 책을 읽고 정리하는 습관이 잘 형성된 아이라는 것을 나중에 확인했다. 책을 읽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글짓기대회를 진행하면서 독서와 글쓰기와의 관계는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가을햇살 톡톡 쏟아지는 추사고택에서의 글짓기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오며  웃음을 짓게 한다.
 
독서신문 1391호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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