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렁 2
마음의 시렁 2
  • 신금자
  • 승인 200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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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일본 전통가옥의 다다미는 물걸레질을 할 수 없다. 마른 걸레, 혹은 청소기로 결을 따라 세심하게 훔쳐내야 한다. 다다미방의 창에는 꼭 창호지를 바른다. 창호지가 다다미의 습기조절에 용이하다. 습하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놓는다. 그들이 다다미문화를 사랑한 이유도 기본적으로 무릎을 굻고 앉는, 그러니 오래 앉았다 일어날 때의 다리 저림을 예방해 주고 여름철의 돗자리, 겨울철에 카펫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리라.

 일본여행 마지막 날을 다다미방에서 묵었다. 구마모또현에 있는 아소호텔이다. 아소산의 활화산 분화구를 보기 위해 강원도 한계령만한 고개를 일곱 개 정도 넘어 온 탓에 도시를 한참 벗어난 아주 깜깜한 시골마을이었다. 오래된 호텔은 다다미방에 낮은 탁자 하나를 들여 놓았고 차와 다기구가 구비되어 있었다.
방안 다다미는 적당한 때에 갈아준 듯 말쑥하나 가구나 건물은 아주 오래된 그대로였다. 캐비닛과 옷장, 응접세트, 탁자, 등 건물이 너무 낡고 어두워서 조금 으스스했다. 다행히 방 가운데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의 물이 따뜻했다. 차를 마시고 담소할 수 있는 온기가 전해졌다. 그 탁자 때문인가. 일본인들은 절대로 벽에 등을 기대지 않는다고 한다. 방에서도 꼿꼿한 긴장의 문화다. 일본인들이 서로 터놓고 방문하는 일이 드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놀러오란다고 얼른 방문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과 속마음이 다르다하니 잘 알고 방문 할 일이다.

 그들 나름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또 있다.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지 않을 때도 꽉 조여 놓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주할 때는 줄을 팽팽히 당겨서 사용하지만 뜯지 않을 땐 줄을 풀러놓고 안족도 눕혀서 긴장강도를 줄여준다.

 윗목에 그들의 다다미방에 어울리는 유까타를 얌전히 갖다 놓았다. 기모노처럼 생긴 잠옷이었다. 그들의 문화는 잠옷도 느슨하지 않다. 발목까지 오는 꽃문양이 찍힌 좁고 긴 드레스와 덧입을 수 있는 두툼한 저고리다. 역시 누비끈으로 허리를 바싹 동여매 왼쪽에다 리본으로 마무리를 했더니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는 기모노자세가 나왔다.
기모노나 유까타는 여자 남자 모두 왼쪽 깃이 오른쪽 깃 위로 오도록 맨다. 만약 친구가 오른쪽 옷깃을 왼쪽에 올리고 집에 찾아오면 “나 너무 어려워 죽게 생겼다.” “나 좀 도와줘” 란 뜻이란다. 그러나 정작 찾아와서 해야 할 얘기는 끝까지 속에서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몇 시간을 다른 얘기만 주고받다 일어서지만 그 친구의 옷깃을 보고 찾아온 의도를 알게 된다고.
그래서 친구가 일어설 때 “좀 굴려봐” 하며 슬쩍 돈을 쥐어주면 “왜 이래, 나 그런 능력 없어.”하며 사양하다 못이기는 척 하며 받아간다. 혹, 그 친구에게 신뢰를 못 주었거나 형편이 못 되어 꾸지 못해도 크게 마음 상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인가. 어쩐지 씁쓸하고 답답하다. 사우나에서 혹 사업의 성사가 있는 이유도 유까타 때문이라니- 

 그 뿐 아니라 일본인들은 길을 묻는 일도 되도록 삼간다. 찾아 헤매다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때 묻는다고 한다. 우리는 막무가내다. 차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 묻는다. 모르니 당연하다는 태도로 말이다. 뜻하는 바를 자세히 얘기할 겨를도 없다.
그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성근 말투 속의 생략된 사정을 대충 짐작하고 아는 데까지 기꺼이 설명을 해주느라 애를 쓴다. 오히려 묻는 곳을 모르면 난처해하고 미안함을 표한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속담이 우리를 이리 의연(?)하게 했나보다. 또한 아무리 대궐같이 너른 집이라도 기댈 데가 있어야 편하게 생각한다. 기댈 데가 없으면 쭈뼛거리다 이내 돌아온다. 손님이 그 집의 격식에 구애 받고 눈치를 살핀다면 나누는 얘기도 그리 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쑥 찾아가도 이른 아침이나 너무 늦은 때만 피하면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최소한 이웃사촌이라는 까다롭지 않은 천성과 인정은 세계에서 우리 나라가 으뜸일 것이다. 겉으로는 싹싹하고 친절하지 않지만 서로 부대끼는 크고 작은 일들을 덮고 눈감아주며 진정 어질게 사는 모습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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