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전집펴낸 강우식 시인
시전집펴낸 강우식 시인
  • 김경배 기자
  • 승인 200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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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행시의 대표적 인물
한 나뭇가지의
초록을 뒤흔들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던
바람이
이 땅의 겨울에도 분다.
죽은 자의 영혼도
바람 속에서 일깨워지는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맥을 놓을 때
매서운 채찍을 휙휙대며
너는 어디선가 왔다.
역사의 한 章
겨울의 이 광막한 벌판을
바람이 지나간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들이
다시 하늘로 가고 싶어
일시에 떠오른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절망치 않았던
흰옷의 우리 조상들의
함성이 들린다.
누군가가 아직은 있어
겨울의 두께,
눈보라의 감옥 속에서
절규하며
위대하게 흰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고려의 눈보라」둘째마당 바람 전문
 

우리 시문학에서 사행시는 김영랑에서 시작되어 박희진, 강우식을 거쳐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 문학평론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최근 시전집을 발간한 강우식은 30년 이상 4행시를 써오고 있는 시인이다.
1966년 「사행시초(四行詩抄)」를 발표하면서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그의 사행시양식은 지속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사행시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우식은 “한국시가 모체인 향가의 4구체라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그것의 끊임없는 발전계승의 과정에 있으며 한국시 형식의 발달과정이 반절성(半節性)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사행시라는 틀은 정형이지만 리듬은 정형의 음수율을 두고 싶지 않은 것이 자신의 사행시”라고 밝히고 있다.

▲ 강우식 시인

 


한국적 사행시의 대표적 인물

강우식 시의 전체적 양식의 특징은 ‘4행시 양식의 일탈’이며 시의 정서 구현에 있어서는 ‘서정적 내밀화와 일탈’이라는 대립적 구조가 특징이다.(진순애 성대강사). 이와 관련 진순애씨는 이 같은 강우식의 사행시는 초기시와 후기시의 관계가 대립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사행시의 특성과 유사하게 이원적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즉 초기에는 <외향적 정조의 동적인 특성>을 보이고 후기에는 <내향적 정조의 정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편차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시인의 삶의 여정과 같은 궤적이며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일생’이라는 인간 삶의 보편적 흐름과도 같다는 것이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애정

그의 초기시의 특징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애정’으로 점철된다. 특히 민족민주운동이 활기를 띠던 1970년대 발표된 두 번째 시집 『고려의 눈보라』(창작과비평사, 1977)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함께하고 있다.「탈춤고」, 「속화고(俗畵考)」, 「화랑고」, 「출토된 울음에 의한 습작」, 「수술」, 「고려의 눈보라」등 6편의 장시로 묶여 있는 이 시집에는 민족과 역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강우식은 『고려의 눈보라』에서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삶과 현실을 장시로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가 1965년 시작(詩作) 활동을 한 이후 40여년에 걸친 시력(詩歷)을 가로지르고 있는 시적 인식이기도 하다.
강우식은 이와 관련 “몇몇 절대자의 아픔이 아니라 민족 다수로서의 이름도 없이 이 국토를 살다 사라져간 서민들의 아픔과 또 진정한 의미로서의 나라사랑하는 자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시는 올가즘이다’
강우식은 초창기에 역사와 민족의식에 관련된 시를 많이 썼지만 그렇다고 사랑과 자연을 읊은 시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편으로 자연주의자이며 섹스애찬론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시는 올가즘’이라고 말한다. 그가 시를 쓰는 것은 하나의 올가즘의 경지를 맛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에게서 시란 그 자신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한다. 시는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의 기쁨의 산물이며 이 기쁨을 우리들과 같이 맛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섹스는 시다」에서 그는 “내 욕망의 제일가는 본능은 섹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섹스의 본능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시에 있어서 섹스를 즐겨 그 주된 테마로 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섹스는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려는 가장 인간적인 몸부림”이자 “가장 인간답게 살려는 생명의 우렁찬 노래”라는 그의 섹스론. 그래서 그는 시인에게 성에 대한 자각은 노래와 같은 것이고 시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다를 사랑한 자연애찬론자
그의 시론은 독특하다. 그는 30,40대에는 ‘섹스는 시다’, ‘시는 올가즘이다’라는 시론을 가졌었고, 50대에는 ‘시는 씨방’이라는 시론을 펴나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시는 자연이다’라는 시론을 주장한다.
그가 최근에 펴낸 『바보산수』, 『바보산수 가을 봄』등의 두 권의 시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시작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온 시론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시에서 자연이 빠진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원도 주문진에서 낳고 자랐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은 항상 바다와 함께했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 그래서인지 강우식은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오늘 시를 쓰도록 만들어준 근원적인 스승을 대라면 ‘바다’야말로 시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위암 수술 후 투병중이라는 水兄 강우식. 바다와 같은 삶을 꿈꾸는 그의 시세계가 결코 작지 만은 않아 보인다.
 


강우식
시인, 성균관대 시학 교수
66년 <현대문학>에 「4행시초」로 문단에 데뷔
시집 『고려의 눈보라』『바보산수』외 다수
시론 <절망과 구원의 시학>, 수필 <통금 속의 사연들>외 다수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월탄문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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