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의 반란 “더이상 잊혀지지 않아”
요즘 직장가엔 과거와는 달리 ‘평생직장’ 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위에선 ‘까고’ 밑에선 ‘치고 올라오는’ 직장생활의 비애는 이젠 더 이상 이슈화 되지도 못하는 일상 생활이 되어버렸다. 젊은 시절 열심히 부려지다 버림받음이 팽배해진 사회이다. 마치 점심 식사 후 입가심이 되어졌다 버려지는 커피를 담은 종이컵처럼 말이다.
오현종의 신작인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일회용의 비애를 그리고 있다. 최근의 <카지노 로얄>까지 총 21편의 작품이 발표된 헐리우드의 유명 영화 시리즈인 007시리즈에선 매번 본드걸이 바뀌어왔다. 매 시리즈 마다 주가 되는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본드걸이 맡은 임무는 그걸로 끝. 자신의 소명을 다한 본드걸은 어느 덧 뇌리에서 잊혀져 간다.
주인공 미미는 유명한 스파이지만 속은 그저 그런 남자인 007에게 버림받은 후 직접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미미도 우리가 알고 있는 미모의 본드걸은 아니다. 입사시험에 마흔 번이나 떨어진 청년 실업자의 대표격인 비운의 한국 아가씨이지만 혹독한 스파이 훈련과정을 거치고 살인 면허를 받은 후 명실공히 스파이로 다시 태어난다.
등평도수의 경신술과 게다짝을 암기로 쓰는 스파이 미미.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 속에서 그녀는 어느덧 자아를 찾아간다. 더 이상 본드를 향한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본드걸이 아니다. 본드걸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제임스 본드에게 묶여있는 하나의 부수적인 도구와도 같은 의미이기에 그녀는 그러한 이름을 버리고 하나의 자아로써 다시 태어난다. 스파이 013 으로 말이다.
사라진 수많은 본드걸들의 뒷 이야기는 이 작품과 미미에 의해 새로 쓰여지고 있다. 더 이상 뇌리에서 지워지는 존재가 아닌 주인공으로써 새로 등장한 미미의 이야기가 신선한 그 발상만큼이나 상쾌발랄하게 그려지고 있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30쪽 / 9,500원
[독서신문 권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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