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소중한 가치의 건재를 기대하며
정작 소중한 가치의 건재를 기대하며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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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독서신문’ 창간 30주년에 드리는 글  

노자가 거의 임종 상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입을 열어 보이며
“내 입안에 무엇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의아하게 여긴 제자는 한동안 스승의 입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제 눈에는 혀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자 노자는
“그러냐!”
하면서, 
“젊어 혈육이 왕성하고 이 또한 건재할 땐, 그게 간혹 혀를 깨물어 아프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는 강하고 상대적으로 혀는 약한 것으로 알았었지만, 종래에 남는 것은 이가 아니고 혀니 진짜 강한 것은 혀니라. 강한 것은 그 위세를 오래 떨치는 것 같지만 실은 이내 무너져 없어지고 마는 것이니 결국은 약한 것에 불과하다. 정말 강한 것은 오래 건재한 것이니라.”
 
 이 성현의 일화 안에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을 만한 소중한 깨달음의 씨앗이 들어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정작 소중한 것의 가치를 폄하하고, 대신 한낱 허상에 불과한 명리(名利)에 혼을 빼앗긴 채 저마다 표류하고 있다.
 물론 이른바 현실적인 것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경우는 유한적 존재에 불과한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허망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정작 소중한 것을 잊거나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자와 그의 제자의 담화 내용을 하나 더 소개하는 것으로 위 일화의 진의를 파악하기로 한다.
 
 어느 날, 장자의 제자가 장자에게 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이야기는 실로 그럴 듯하지만, 너무나 크고 황당하여 현실세계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너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구분하지만, 네가 서 있는 땅을 예로 들어보자.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없다. 그러나 네가 딛고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를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땅 위에서 서 있을 수 있겠느냐. 너에게 정작 필요한 땅은 너를 떠받쳐주고 있는, 바로 네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독서신문’이 창간 30이 되었다고 하여, 떠올려 인용해본 고전적 서사다. 70년대에 젊음의 뿌리를 두고 살았던 이들에겐 이 신문에 대한 나름의 추억이 없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누구나 가난했고, 그래서 무엇인가 궁핍함을 느끼며 나날을 살고 있었지만, 이를 해결하고 나름의 꿈을 갖게 했던 것은 명리의 유혹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음에 그리고 정신에 꿈을 심어주었던 그 무엇이었다. 철학이고 역사고 또 이데올로기적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곁에는 ‘독서신문’이 있어 나름의 몫을 하곤 했다. 어쩌다 신문 한 구석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의 기사가 있으면 오려 노트 위에 붙여놓고 부자가 되곤 했었다.
 그때 ‘독서신문’은 온통 그러한 것들로 채워져 있으니, 오려서 붙여놓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릴 필요도 없이  통째로 모아 좁은 방 한쪽에 쌓아 놓곤 하던 신문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우연히 ‘독서신문’에 되지도 않은 글을 싣게 되어 글을 보내고 그리고 그 글이 게재된 신문을 받아들거나 독서신문에서 일하는 가자분과 통화를 할 때마다  70년대,  아니 내 대학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독서신문이 이렇게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이 신문이 ‘이’가 아니라 ‘혀’이기 때문일 것이고, ‘발 딛고 있는 곳’에 한정되지 않고 그 외의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정작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재해 표류하고 있는 시대를 깨워내는 신문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다해주기 바란다.

독서신문 1390호 [2005.1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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