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심판
위대한 심판
  • 조완호
  • 승인 200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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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 조완호     © 독서신문
10.26 보궐선거가 막을 내렸다. 한쪽에서는 이에 큰 의미를 부여해 판도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또 한쪽에서는 이를 축소 평가해 충격에서 벗어나려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단 끝난 일이니 굳이 뭐라 언급할 대상도 못되지만, 결과를 지켜보며 중요한 몇 가지를 확인하고 유권자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누가 당선되었거나 낙선되었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기대할 것도, 그렇다고 실망할 일이 아닌 만큼 그런 것을 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바는 신의(信義)에 대한 심판의 엄중함 때문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평가를 두고 또 뭐라 이유를 대며 매도(罵倒)의 화살을 쏴댈지 모르지만, 결정에 복종하겠다는 선서까지 한 입장에 마음처럼 되지 않자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피선거권자로 등록해 선거를 치룬 행위는 누가 보아도 비겁해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출중한 인물에 지명도까지 상대 후보보다 높으니 결과를 낙관해 그런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사람을 어떠한 집단적 결의를 한 것도 아닌데 그를 추출시켜버렸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단적으로 내보인 중요한 선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런 유권자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을 수밖에 없다. 오만(傲慢)이 발붙일 곳이 없음을 입증한 예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함을 입증한 바이기 때문이다.

공자(孔子)가 노자(老子)를 찾아갔을 때, 노자는 공자에게
“군자는 때를 만나면 벼슬을 해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하겠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쑥밭을 걸어 다녀야 하는 것이오. 나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한 곳에 보관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물건이 없는 것처럼 良賣深藏若虛 보이듯, 덕을 많이 쌓은 군자의 태도도 겉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여야 한다君子盛德 容貌若愚’고 들었소. 그대는 교만함驕氣과 욕심多慾을 버려야하며, 잘난 체하거나 뽐내지態色 말아야 하고, 쾌락淫志을 멀리하기 바라오. 그런 것들은 그대에게 무익한 것들이기 때문이오. 내가 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뿐이오” 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공자는 돌아서서 제자에게 말하기를, 
“새는 날 수 있고, 고기는 헤엄칠 수 있으며, 짐승은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놈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놈은 낚시로 잡으며, 나르는 놈은 활을 쏘아 잡을 수 있을 것이나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용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내가 오늘 만난 노자는 마치 용과 같더라”고 했다.

이것은 교만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만족함을 알고, 쾌락을 멀리하는 노자의 단면을 보고 한 공자의 경탄어린 찬사讚辭로 볼 수 있다.
명리名利는 한낱 검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 때문에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망신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민도(民度)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훌륭한 지도자만 찾아내면 장래가 창연할 것이다.

노자는 위정자에게 ‘지智’로써 나라를 다스리려 하지 말고, ‘무사無事’로 천하를 취할 것以無事取天下을 권했다. 다시 말해 ‘무위無爲’와 ‘자연自然’만이 최고의 통치방법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실천하는 길만이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다.

‘정치’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자유를 규제하는 제도나 만들어내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한 백성의 권리를 통제하는 일은 ‘도적의 무리盜兮’나 하는 짓이라고 했던 노자는 <도덕경> 제 58장에서 정치가 빈틈이 없으면 국민이 초조한 나머지 순박함을 잃고 간사해진다고 보아,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이 순박함을 잃지 않지만, 정치가 지나치게 밝으면 국민이 간교해진다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結”고 했다.

여기서의 ‘대범悶悶함’이란, ‘큰 정치’를 말하는 것으로 위정자가 국민의 자유스러운 삶을 저해하지 않는 것을 이르며, ‘정치가 지나치게 밝다는 것察察’은 국민이 여유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위정자가 국민을 여러 방법과 수단으로 옭아매는 이른바 정치 행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법치(法治)나 덕치(德治)보다 무치(無治)가 최고의 선진정치라고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대한민국이 하루 속히 안정을 찾아 모난 현실을 극복하고 괄목할 정도의 발전이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독서신문 1392호 [200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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