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의 어둠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등잔 밑의 어둠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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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야기된 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아마도 한민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이번 광복 60주년을 즈음하여 행해지는 서울에서의 각종 행사와 북한 대표들의 행보, 그리고 일본의 태도나 움직임 등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의 운명과 민족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전망과 우려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이 한 자리에 모여 화합을 도모하는 여러 행사를 가졌다고 하여, 지금까지 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고 여겨 스스로 그동안 견지해온 정신무장을 해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복선(伏線)적 행동이 사회주의의 생존 전략임을 지금까지 너무나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 견해가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 이런 분위기가 발전되어 그동안 구축한 갈등의 골을 메우는 한편 이후 우리 뒷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시대의 주민으로 살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나 소망의 실현보다 더 먼저 요구하는 것은 민족이 아닌 국민의 어려움을 챙기라는 일종의 주문이다. 핵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이해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민에 대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떠한 노력’이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진작시키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 8?15 기념 민족축제는 남북이 하나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축 쳐진 어깨에 힘을 담아주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관계자들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급급하기보다는 우리 국민들이 마음껏 ‘대한민국’을 연호할 수 있게 해야 했었다. 이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실추된 신뢰감을 회복하는데 또 실패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민족’이 혈통적 낭만주의를 기본으로 한 집단이라고 한다면, 체제적 현실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국가’다. 국민에겐 민족보다 국가가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 2002년에 월드컵 때, 우리가 그토록 흥분되어 “대한민국”을 연호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이것은 연일 계속된 승전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녀노소 없이 한 마음으로 뭉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였고, 모두가 함께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가 보기에도 가슴 벅차서였다.
 오죽하면 남의 집 담을 넘어가 물건을 훔쳐 그것으로 연명하는 사람들까지 이 분위기에 매료되어 기간동안 각종 범죄의 수가 급격히 줄었었다고 하지 않는가.

 행사를 준비하면서 우선 이 점을 간과했기에 결국 아쉬운 잔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데려다놓고 과거처럼 발악적 구호를 외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현실로 인정하고 상황에 대처해야 했었다. 서로가 상대를 인정해 태극기와 인공기를 함께 게양하고, 그 아래서 자기 팀을 힘껏 응원하고 결과에 승복해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형제애를 발휘했다면 오히려 결과는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회했을지도 모른다. 담대하게 대처하고 처신했어야 했다.

 남북이 한 자리에 섰었다는 자체 만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의 그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나름의 포석을 놓아야만 했다. 그게 오늘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거부였던 피츠제널드의 일화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먼저 사랑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해보기로 한다.
 
 아내를 잃고 열 살짜리 아들마저 병으로 죽자, 세상에 혼자 남은 피츠 제널드는 전 재산을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사들이는 일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는 재혼을 하지 않았기에 평생을 그 작품들을 가족처럼 알고 애지중지하며 노년을 보냈다.

 그가 죽고, 그 그림들은 경매에 붙여졌다.
처음으로 지방의 무명화가가 그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작품이 경매에 올려졌다.
 지명도가 없는 화가의 작품이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때, 한 노인이 손을 들어 작품을 사겠다고 했다. 노인은 어릴 때부터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 세상을 뜬 그 아이의 어머니와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 집의 하인이었다.
 그의 차림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지만, 그들의 눈엔 저런 것도 그림이라고 사느냐, 며 야유하는 빛이 역력했다. 누구도 응찰할 의사를 보인지 않자, 노인은 가지고 있는 대로 돈을 꺼내 들고 앞으로 나왔다.

 이때, 경매를 중단시키고 생전의 피츠 제널드의 변호사였던 사람이 사정을 얘기한 다음, 유언장을 읽어 내려갔다.
 
 “누구든지 내 아들을 그린 이 그림을 선택해 결정된 사람에게 내 소장품 전부를 무상으로 드리십시오. 이 그림을 소유하고자 하는 분은 후에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분이라 여겨져서 그렇습니다. 나는 죽어서도 내 가족을 가장 사랑할 것이고, 내 가족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내 가족처럼 역시 사랑할 것입니다.”
 
    
 그는 사회에 자기 재산을 헌납하지 않고, 이후에도 역시 자신의 가족을 기억하고 변함없이 사랑해줄 사람에게 이후를 맡기려 했던 것이다. 자신의 부(富)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사회에 바치지 않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가족에게 양도하고 떠난 피츠 제널드는 비록 존경받는 사회사업가는 못 될지 모르지만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한 아버지로 영원히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 고통 때문에, 심지어는 목숨까지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 동포들의 구제를 위해 원조를 하는 일도 좋은 일이고, 민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이든 인민이든 국가 구성원의 생존이나 복지문제는 민족적 차원보다는 국가가 앞장서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위정자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위인이기 때문에, 그 권좌에서 끌어내려져야 한다. 숲을 이루게 하기 위해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청맹(靑盲)에 불과한 위인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길지 알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무조건 ‘사촌(四寸)’으로 인정했던 것이 우리의 전통적 관념이었던 것은 그들을 배반하는 것이 얼마나 몰직한 짓인가를 명찰해서다. 또 역량이 미칠 수 있는 곳에 먼저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정치의 덕목이다.
 무조건 내 것을 내준다고 하여 상대를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게 상대를 영원한 무능력자로 만들 수도 있다. 거지 근성을 키워 무능력자로 전락시키는 것은 가장 잔악한 죄악이다. 쥐를 잡는 법을 배우지 않은 고양이는 쥐의 놀림감뿐만 아니라, 결국 쥐에게 잡혀 그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알뜰하게 국정을 꾸려 살림을 번성시키는 것은 살림을 책임진 사람이 목숨처럼 견지해야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다. 필요 없는 일에 돈을 물 쓰듯 하는 것은 무책임한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을 죽어서도 사랑하겠다는 피츠 제널드처럼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내 나라를 차례대로 사랑하는 풍토가 제대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민족의 문제를 논할 자격과 통일을 논할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인위(人爲)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언젠가는 들통이 나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파문이 일고 있는 문제들도 역시 순리를 저버리고 역리를 관례로 생각했기에 빚어진 일들이다. 가까운 곳의 사정을 챙기지 않고, 먼 곳의 일에 관심을 두고 일을 벌이는 것은 공명심(功名心)에서 들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짓이다.
 그까짓 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결국 모두는 검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말 도움을 받았다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주변이 모두 어려운 형편에 천 가마의 쌀을 사 보낸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한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등잔 밑의 어둠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어떻든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독서신문 1388호 [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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