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성의 문명의식과 실학
한국지성의 문명의식과 실학
  • 김성희
  • 승인 2010.05.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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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경학은 개혁의 이론적 근거였다
▲ 다산 정약용 선생     © 독서신문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육경(六經) 사서(四書)에 대한 연구로는 수기(修己)를 삼고 일표이서(一表二書)로 천하국가를 위하려 하였으니 본말(本末)을 구비한 것이다.”  -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자신이 추구한 학문세계와 그 결실인 저술체계를 본말의 논리로 천명한 글이다. 본말(本末)은 체용(體用)과 같은 의미로 유학의 기본 패러다임이다. ‘본=체’에 해당하는 수기(修己)는 주체의 도덕적 확립을, ‘말=용’에 해당하는 치인(治人)은 주체의 정치적 실천을 말하는데, 본말은 이 양자를 구별하면서도 통일적으로 사고하는 논법니다.

‘육경사서에 대한 연구’는 경학 저술을 가리키는데 주체의 도덕적 확립 내지 사회적 실천의 이론적 기초를 위한 것으로 ‘본(本)’에 속하며, ‘일표이서’는 <경세유표>와 <목민심서>·<흠흠심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末)’에 속하는 셈이다. 유학의 본말체용의 논리는 원칙적으로 양자 간 경중이 있을 수 없고 서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다산학은 본체에 해당하는 경학과 그 사회정치적 실천에 해당하는 경세학(經世學, 정치경제학)으로 구축돼 있고, 그 결과로 다산은 6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긴 것이다. 따라서 다산학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학과 경세학의 체용적(體用的)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요령이다. 요컨대, 다산의 경학은 현실의 정치개혁을 위한 이론작업이라 할 수 있다.
 
 
18, 19세기 한국경학은 위기의식의 소산

유교 경전이 이 땅에 들어와 경전적 지위를 확보한 것은 사뭇 오래다. 그에 비해 경전을 비판적(학문적)으로 따져서 해석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었다. 시기별로 대강 훑어보면 경학의 본격 저술은 17세기에 들어와 출현했고 18, 19세기는 ‘경학의 시대’라 불려도 좋을 만큼 성과가 풍성했는데, 특히 19세기는 한국경학사의 종점이 되고 말았음에도 오히려 그 성과는 풍성했다. 우리는 이런 학문적 정신현상에 주목하고 18, 19세기의 경학이 어떤 시대적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세기에 있어 경전은 통치체계의 사상적 기반이요, 규범이며 지침이었다. 그래서 경전의 해석권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주희(朱熹)의 <사서집주(四書集註)>와 <시집전(詩集傳)>, <서집전(書集傳)>, <주역전의(周易傳義)>에 독존적 권위가 부여된 것은 이 때문이다. 종래 학자라면 응당 경전에 치력했다. 그러다가 17세기부터 경전에 대한 자기대로의 해석 작업들이 나타난다.

한국 경학의 성격은 ‘주자학적 경학’과 ‘탈주자학적 경학’으로 양분할 수 있을 듯하다. 전자는 주자의 경전해석을 기준으로 탐구한 것이고 후자는 주자의 해석도 여러 경학적 성과들 중 하나로 격하시킨 상태로 자유롭게 풀이한 것이다. 전자가 주자 경학의 틀에 갇혀 있다고 해서 간과하기 쉽지만 그 속에서도 깊이 사색하고 고뇌한 내용이라면 음미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역시 본격적인 경학은 탈주자학적인 비판적 경학에서 출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17세기에 출발해 18, 19세기에 성황을 이룬 한국경학은 한마디로 위기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만청(滿淸)이 중국대륙의 주인이 된 사태는 일차적 충격파였는데, 조선은 명청(明淸)의 각축과정에서 두 번이나 침공을 겪으면서 화이(華夷)의 전도현상을 목격, 가치관의 전도와 문명적 위기를 체감한다. 이것이 반성적 사고로 이어지고 비판적 학풍의 계기가 됐다.
그렇지만, 만청의 중국지배가 곧 안정됐고 동아시아세계는 2백년 가까이 표면적으로 평온을 유지하며 비교적 번영을 누리게 된다. 조선 또한 전에 없는 시장경제의 발흥과 사회·문화적인 활력을 보였고, 한편으로는 신분질서가 흔들리며 민중동향이 심상치 않게 변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기존 체제로 수습하기 쉽지 않은 ‘체제위기의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당시 동아시아세계가 평온하게 보였던 것은 ‘피상적’이었을 뿐, 당시 서세동점이라는 세계사적 조류를 고려하면 태풍의 전야처럼 위기가 접근하는 형국이었다. 다만 한반도상에서 잘 감지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실학자들의 개혁론 상고주의(尙古主義)

16세기 말엽부터 중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서학(西學)은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천주교의 종교 신앙운동으로 한반도에서도 문제시 된다. 안정복(安鼎福)은 그 사이의 정황을 대략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서양 서적은 선조 말년에 동녘으로 들어온 이래 명경(明卿) 석유(碩儒)라면 누구나 읽어 보았지만 제자서(諸子書)나 도(道)·불(佛) 등처럼 여겨서 서실에 완상물로 놓아두었으며, 취하는 바는 단지 상위(象衛:천문·역학)·구고(句股:기하학)의 학술뿐이었다. …계묘(癸卯) 갑진(甲辰)년 간(1783~1784)에 재주있는 젊은이들이 천학설(天學設)을 창도한 것이다.  - 천학고(天學考), 순암집(順庵集) 권17
 
당시 정부나 지식인들이 천주교에 대해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방관하고 있었던 까닭은 그것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현상적으로 아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런데 안정복이 연도까지 명기했듯이 천주교가 종교 신앙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1801년 소위 신유사옥(辛酉邪獄)에서 정치적 희생물이 된 이가환은 정부의 폭압적 대응방식을 두고 “몽둥이로 재(災)를 두드리는 격이니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더욱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적중했고, 1839년 기해사옥, 1866년의 대박해로 이어져 병인양요를 불렀다.

박지원은 천주교 신앙에 대해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을 두고 일찍이 “내가 좋아하는 바 선(善)이요, 내가 신앙하는바 천(天)이다. 어찌 선을 가로막고 천의 신앙을 금지하는가?”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지원의 이 발언은 성리학적 정신전통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폭력적 대응방식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사상적 반성과 사유의 전환이 심각하게 요망되는 대목이다. 그것은 한자유교문화권의 사상 전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학의 고유한 과제였다.

18, 19세기가 ‘경학의 시대’로 기록된 요인은 체제의 내적위기에 따른 발본적 개혁의 과제를 응당 경학에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는 실학자들의 고뇌였던 것이다.

그런데, 경학에 기초한 현실대응 방식은 다분히 복고적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역사에서 흔히 있었던 ‘복고(르네상스)’란 문자 그대로 옛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왜 복고를 취했을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개혁을 주장하면 독한 공격이나 저항에 부딪히기 쉽고, 그 비난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선 성현의 권위를 빌려야만 하는 의미가 있었을 듯싶다. 실학자들의 개혁과 경학 역시 이런 의미로, 경학은 일종의 방패막이며 탁고개제(托古改制)의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즉, 실학자들의 경학과 개혁론의 관계를 단순한 ‘탁고’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전을 한낱 방패막이로 끌어온 것이 아니고 실로 고뇌에 찬 진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실학자들의 개혁론의 기본성격을 상고주의(尙古主義)라고 규정한다. (다음호에 계속)

 /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 정리 김성희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역사박물관)에서 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 지성의 문명의식과 실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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