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逍遙)
소요 (逍遙)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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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한 사문이 아무리 정진을 거듭해도 정신적 갈증이 해결되지 않아 스스로 생각해도 도저히 자신은 깨달음에 이를 것 같지 않자, 조바심이 나 혼자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한동안 그 꼴을 지켜만 보고 있던 그의 스승이 조용히 그를 불러 물었다.
“너는 속세에서 어떤 일을 했었느냐?” 뜻밖의 스승의 물음에 사문은
 “거문고를 탔습니다”
라고 사실대로 아뢨다.

 그의 대답을 듣고 스승은 다시 제자에게 물었다. 
“그때, 거문고의 줄을 너무나 팽팽하게 조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냐?”
“줄이 끊어지고 말아 다시 끈을 매야했습니다.”
“그러면 줄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 줄을 느슨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냐?”
“소리가 제대로 나질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은 제자에게 일렀다.
“수행을 하는 이유는 너의 몸에 사악함이 깃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방비 수단과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조급해하는 것은 거문고의 줄을 지나치게 당겨 결국 끊어지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그렇다고 하여 너무나 느슨하게 풀어놓는 것 역시 제 음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수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거문고의 선을 고르게 하듯 제 몸과 마음의 평상상태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수도를 하는 것은 자문自刎 행위와 다르지 않으니, 먼저 네 몸의 선의 상태를 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급선무니라“ 하고 일렀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선율의 소리를 내기 위해 태어난 악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는 것도 좋은 연주를 위한 한 방편이고, 비렁뱅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옷차림을 정제히 하는 것도 실은 이를 위해서다.

 ‘광기狂氣는 말뜻 그대로 미친 짓에 불과한 것이다. 연일 미친 자들 때문에 사방이 어수선한 것은 삶의 목적과 이유를 잊고 표류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 자체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서인데 줄을 끊어버리거나 아니면 일부러 선을 풀어버려 걸쳐만 놓는 것을 멋으로 알고 조일 생각을 않는다면, 그것은 제 정신이 아닌 광대들의 난동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끈이 끊어진 악기를 가지고 벌거벗고 뛴다고 하여 무슨 소리가 나겠는가. 지나치지도 그렇다고 하여 모자라지도 않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의를 저버리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제 것도 아닌 남의 악기의 선까지 끊어버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철없는 망나니들의 작태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무쪼록 어수선한 분위기가 속히 수습되어 안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 때문에 저마다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루하루가 우리 생에 중요한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고 나면 다시는 밟아볼 수조차 없는 귀한 시간이니 헛되게 보내고 후에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이고, 그것만 뜻대로 되면 모두가 다 이루어질 것 같지만 이 모두는 한낱 검불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빨리 깨닫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주체로서의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옛 어른들이 그토록 삶의 덕목으로 ‘헛됨으로부터의 이탈’을 외치며, 소요(逍遙)를 권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독서신문 1387호 [200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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