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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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천명관은 영화 시나리오로 글쓰기를 먼저 시작한 작가다. 그래서일까? 천명관에게는 국적의 경계 따윈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는 포르투칼 하녀와 미국의 갱, 프랑스의 철학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외국 인물들의 등장이 소설을 신선하게 만든다. 그에겐 한국인이 나오고 한국인을 위한 소설이 중심이 아니라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자 한다.
천명관의 재기발랄한 문장이 첫 선을 보인 「프랭크와 나」는 테마나 이야기의 상징성에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 될 일인데 되레 이전 순문학에서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본 작품은 특출하게 빼어난 대안을 제시하는 소설은 아니다. 되려, 타 작품에서 비극성을 심화하는 장치로 여기는 비극적 사건의 연속을 그 재기발랄함으로 희화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강한 개성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결말부분에서 랍스터 가족회식을 하는 대목에서 모두가 배꼽이 빠져라하고 웃는 대목은 어찌보면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끝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이 소설 안에서는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천명관은 결국, 뚜렷한 방법론을 상실한 현 시대에서 회상과 웃음은 더없이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이야기에 중심을 맞춘, 희화화된 비극이 이 작품의 주안점인데, 구성상 결말에 드러나는 트릭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이지만, 현시대에는 정 반대로 로망이 거세되었기에 모던하고 무미건조한 불륜이다.
본문에서 로망을 지니고 있던 인물은 요한나 단 한 사람뿐이었고, 또한 시대에 걸맞지 않게도 결국 살아남는다. 그 아이러니함이 돋보이는 작품. 그러나 그 최후의 로망이 하필이면 악녀의 몫일 줄이야. 이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세일링」은 전반적으로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 그 전반적인 움직임의 주체는 가족이며 그 가족은 자동차에 타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자동차는 스스로 동력을 얻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동체가 아니라 고속도로라는 틀에 있기에 타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달려있는 것이다.
반면 범선은 어떤가. 비록 룰(신호등)을 따르긴 하지만 아무 차도 없는 상황이니만큼 타자에 얽매이지 않고 서서히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소시민으로서의 화자의 욕망이 잠깐이나마 발현된 모습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사: 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은 짤막한 역사적 사실을 픽션으로 재구성, 팩션(fac-tion)화한 작품인 셈이다.
당시 팽배하던 미국의 자유주의와 밴담의 공리주의, 그리고 역사상 실재했던 철학자들에 대한 정보를 주석화 함으로서 리얼리티를 살리고, 대사와 상황, 그리고 숨겨진 사실들을 허구로 재구성함으로서 픽션으로서의 극적 효과를 잘 살려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 선보인 대미의 반전 효과 역시 본 작품에서 한 번 더 쓰였는데, 상황의 아이러니함, 극적 반전, 그리고 사건의 독특한 희화화 등 천명관 소설에서 쓰였던 장기들을 조금씩 전부 맛볼 수 있다.
천명관은 소설가이기 전에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썰렁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는 아니다. 이야기가 그를 통해서 흘러나오면 기시감과 함께 낯선,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의 이야기에는 페이소스가 있는가 하면 유머도 있고 애잔함과 유쾌함이 기이한 형태로 습합된다.
/ 이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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