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극복
갈등의 극복
  • 김성현
  • 승인 2007.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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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월간 선한이웃 발행인)

▲ 김성현     ©독서신문
지난해 후반부터 올해 초까지는 내게 참 바쁘고 힘든 시간이었다. 인생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을 만나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학연한이 다 차서 학적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고, 성격상 수료로 마감되도록 둘 수는 없었기에 무리해서 논문쓰는 작업에 돌입한게 불과 수개월 전인데 다행히도 논문이 통과되어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둔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학위를 받으면서 가진 느낌은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뿌듯함, 그리고 새로운 연구에 대한 욕구였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과정을 제대로 마무리했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게다가 그 주제가 이 시대에 나름대로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었기에  향후로도 계속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 때문에 앞으로도 부담이 여전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도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견해에 충실히 동의해서는 아니지만 그가 가진 생각의 일단인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이 불가피하며 그 대결로 인해 상당기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데는 동의한다. 내가 개신교 목사이고 나의 주요 관심사인 이슬람교에 대한 비교적 관용적인 입장에서 볼 때 충돌이 본질이 아니며 충돌로 문제를 해결해서도 안된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서로의 경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와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 공통으로 나오는 인물을 각 상황별로 기록한 내용을 비교하고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와 변형된 경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 본 것이다. 무조건 베꼈다는 인식에서 상대방을 아래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실제적으로는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근본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라고 본다. 자기 입장에 대한 강한 주장을 하면서도 ‘샬롬’이라는 단어로 ‘평화’를 말하고 ‘이슬람’이라는 단어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서로 사랑과 평화를 말하면서도 전혀 그에 걸맞지 않게 행동하여 피흘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경전이 말하는 원뜻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어느 종교의 우월성을 말하기 전에 스스로 그 경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이해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갈등은 어느 세계에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정치가 그렇듯이 종교 역시 갈등을 종식시키고 상호 이해를 통해 공존하는 방법을 열어주는 것이 그 몫이 아닐까를 생각한다. 정치와 종교는 그리 멀지 않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을 종교의 이름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와 종교가 공히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야한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자신을 돌아보며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데에 있다. 문제는 드러났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길을 모색할수도 찾을수도 없다. 그것이 역사적인 아이러니이며 슬픔이다. 갈등이 있기에 노력해야 하는 것이며, 그 노력은 화해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화해는 포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의 종교와 정치 모두가 새겨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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