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로 향한 문학기행
선운사로 향한 문학기행
  • 이병헌
  • 승인 2007.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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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시인 · 소설가 , 임성중 교사)

▲ 이병헌     ©독서신문
일상에서 벗어나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함에 틀림이 없었다. 서로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고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처음에 딱딱했던 분위기가 알콜이 몸 안에 침투하면서 회원들의 입술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옆에 앉은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며 좋은 하루가 되리라 예감할 수 있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나자 군산휴게소에 닿았다. 그 곳에는 부여에서 출발한 p작가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밀린 얘기를 나누었다. 몸 안에 고여있는 물을 쏟고 다시 버스에 올라 한참동안 달리자 버스는 선운사톨게이트를 벗어났다. 지방도를 따라서 달리자 눈이 덜 녹은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운전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옆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선운사에는 몇 번 가 본적이 있었지만 문학기행으로는 처음이었다. 선운사 매표소 가기 전 좌측에 있는 미당 서정주 시비는 우리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수십 년의 세월을 잡아먹은 흔적이 시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선운사 동구'라는 시인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이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되어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미당 서정주[선운사 동구]
  

우리들은 선운사로 향하면서 봄이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옷을 두껍게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 했다. 벚나무 길을 따라서 산사로 접어드는 일행은 봄에 대한 얘기와 전에 와 보았던 선운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운사로 오르다가 왼쪽 산자락에 흘러내리다가 걸쳐있는 것 같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송악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이 패망되기 직전 다른 것보다도 선운사의 송악을 가져가고 싶었으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생장습성 때문에 바위와 함께 가져가지 않는 한 생존가능성이 없어 포기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크기와 진귀함을 더해주고 있는 선운사 송악은 줄기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나무의 높이도 약15m나 되는 거목이라고 한다.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서 가장 큰 나무이고 꽃은 10-11월 에 황록색으로 피는데 짧은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둥글게 모여서 달려있다고 한다. 남부지방에서는 송악을 가리켜 소가 잘 먹는 식물이라고 해서 소 밥이라고도 불리 운다고 한다.
도솔산에 자리잡은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24년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것을 안내문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한창 번창하던 시절에는 89개의 암자에 3천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하니 과연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운사를 관람하고 서정주의 시비를 만나 함께 읽어보면서 시를 읽고 가슴에 집어넣는 즐거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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