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터치가 원래의 뜻대로 노터치가 되어야 하는 이유
노터치가 원래의 뜻대로 노터치가 되어야 하는 이유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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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노터치(no touch)!’라는 금지의 뜻을 담고 있는 명령조의 말 한마디가 구한말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엔 ‘노다지’로 들려 금(金)으로 해석되었고, 이젠 ‘한 군데서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는, 횡재나 뜻밖의 수확’이라는 뜻으로 고정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니 이 말 속엔 자주적 역량이 부족했던 당시 우리 민족의 한과 설움 그리고 이민족의 약탈 및 누구나 운만 좋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뜻이 함께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작 힘들여 노력해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것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뼈골 빠지는 일이고,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맞았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이 배어 있는 말로 바꿔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희망’이라는 단어에 있다. 꿈은 공상(空想)으로서의 꿈과 이상(理想)으로서의 꿈이 있다. 전자는 우연히 찾아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현실성이 없는 꿈같은 꿈을 말하고, 후자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수확할 수 있는 땀이 밴 꿈을 이른다.
 어떻든 후자는 견고한 기반을 닦는 일이니 가치 있는 도전일 수 있지만, 전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무리들까지 병들게 하는 일이니 공도동망(共倒同亡)을 자초하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시책이 발표될 때마다 같이 춤추는 부동산 투기나 토요일 저녁이면 국가 대사처럼 치러지고 있는 로또복권 등이 요즘 유행하고 있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농터가 폐허로 전락해도 값만 오르면 된다는 농부들이 술집이나 전전하고 해외여행에 한눈을 팔고 있는 것도 실은 이런 ‘길 잃음’ 때문이다.
 청년실업에 조기퇴직, 더구나 명예퇴직이 유행처럼 번져 일상화되다보니 ‘함께 망하는 길’을 직업처럼 알고 대드는 사람의 수가 주변에 하나 둘이 아니다. 이른바 정신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공을 잘 차 돈과 인기를 한꺼번에 차지했다고 하니 축구 선진국으로 아이들을 떼로 보내 그에 따른 국고 낭비가 엄청나다고 하고, 방학이면 미국사람들 하는 말을 배우러가는 아이들이 공항 대합실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이른바 졸부들이 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마이클이라는 청년은 이른바 노다지의 꿈에 부풀어 잘 다니던 직장을 집어치우고 은행에서 대출까지 해 고가의 채굴 장비를 구입해 ‘캘리포니아’로 가 금맥을 찾아 산을 헤매고 다녔다.
 몇 삽만 뜨면 금이 기다리고 있다,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낼지 않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아무리 파도 금은커녕 녹슨 쇳조각 하나 나오지 않자 실망해 비싸게 산 장비를 끌고 끼니라도 이를 요량으로 고물상에 가져다 팔게 되었다.

“좀더 깊이 파들어 가보지 그러셨어요?”
고물상 주인의 걱정 어린 한마디였다.

“말짱 도루묵입니다. 쫄딱 망하게 된 처지에 무슨 힘이 남아 있어 더 파고 들어가겠습니까? 앞으로 살아갈 일이 깜깜하네요.”
고물상 주인은 실망해 있는 마이클을 위로할 겸, 식당으로 데리고 가 저녁대접을 하며 그가 작업을 했던 곳의 위치며 지질 상태를 물은 다음, 헐값으로 산 장비를 차에 싣고 가 설치하고 작업에 돌입한 후 불과 반나절 만에 금광을 찾아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불과 1미터 정도 아래에 금맥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 기다리고 한번 먹은 마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야만 목적하는 바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생선을 구울 때도 그렇다. 진득하니 기다렸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조심스럽게 뒤집어 다른 한쪽을 익혀야 제대로 구워질 텐데 자발스럽게 젓가락으로 찔러보고 자주 뒤집어대니 석쇠에 살이 다 눌어붙어 결국은 상에 올려질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때이니 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해 대처해야 한다. 막연한 기대로 샴페인부터 터트리는 것은 망조의 예고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예외가 아니다. 훗날은 생각하지 않고 선심을 남발하는 것은 대책 없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을 낳는 법이다. 처음엔 베푸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를 위기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것은 국민을 도탄에 몰아넣는 일과 다르지 않다. 전세기 80년대 중반 동구권의 몰락이 이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교육이 좋은 것만 골라 먹여 편식(偏食) 지향적 반신불수를 만드는 일보다 백배 더 나은 교육대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속이 들어다 보이는 짓을 스스로 절제하는 길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기 입신(立身)을 위해 대악을 저지르는 얄팍한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한순간에 다 얻으려고 하는 자는 결국 모두를 한꺼번에 잃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교육이고 사랑의 본령인데, 저마다 그 안에 담을 소품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비라도 쏟아지면 버리질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금 크게 잘못된 것을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를 원초적으로 변화시킬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독서신문 1386호 [200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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