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vs영화 - 『러블리 본즈』
소설vs영화 - 『러블리 본즈』
  • 강인해
  • 승인 2010.02.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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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 열네 살에 살해당했다”
 
 
▲ 소설 『러블리 본즈』표지(좌), 영화 '러블리 본즈' 포스터(우)     © 독서신문

 
 
[독서신문] 강인해 기자 = 1973년 14살의 소녀 ‘수지’가 살해당했다. 돼지비계 같고 축축한 입술이 소녀의 입술을 마구 눌러댔고, 소녀의 몸 구석구석은 난자당했다. 14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고 떠난 소녀는 지상에서 살고 싶은 열망을 품고, 가족과 친구들의 곁을 맴돈다.
 
■겁탈당한 소녀, 천국으로 가다
▲ 영화 '러블리 본즈' 한 장면  
‘수지’는 이웃집에 사는 ‘하비’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 남성의 먹잇감이 된다. 눈이 내리는 겨울밤 지름길인 옥수수 밭을 지나던 수지는 아이들을 위한 클럽하우스가 있다는 하비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이 살해당할 굴에 제 발로 찾아간다.

피부가 검은 인도출신 ‘레이’와의 첫 키스의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수지는 이곳에서 성도착증이 있는 중년 남성에게 몸을 겁탈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하비는 수지의 시신을 자신의 집 지하에 있는 금고에 숨겨두지만 그녀의 영혼만은 가둘 수 없었다. 수지의 영혼은 천국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러블리 본즈』는 자신이 강간당한 사건을 다룬 회고록 『럭키』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 앨리스 세볼드가 2002년 내놓은 첫 소설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러블리 본즈>가 지난 25일 개봉했다. 두 작품 모두 죽은 수지의 시선으로 깊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소설은 수지의 목소리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에 대해 앨리스 세볼드는 “글을 쓸 때 ‘수지의 눈으로’라는 말을 책상위에 써서 붙여놨으며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엄격하게 잘라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을 집필하는 내내 등장인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나는 단지 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은 수지가 남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심정이 소녀의 감수성으로 잘 표현됐다.

 
▲ 영화 '러블리 본즈' 한 장면 

 

반면, 영화 <러블리 본즈>는 소녀의 심정을 컴퓨터 그래픽과 다채로운 색감으로 묘사했다.
감독을 맡은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영화로 제작한 경험을 살려 이번 영화에서도 상상력과 섬세한 연출력을 발휘했는데, 특히 천국의 이미지를 오색찬란한 색감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연출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소녀와 가족들
『러블리 본즈』는 죽은 소녀의 시점으로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의 상처 치유 과정을 따라가고, 그 속에서 수지 역시 자신의 아픔도 위로받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마치 작가가 직접 경험한 가족 관계를 그린 것처럼 가족들의 캐릭터와 대사, 행동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 영화 '러블리 본즈' 한 장면 



수지를 ‘1등 항해사’라고 부르며 병 속에 모형 배를 만드는데 열중하는 아빠, 촌스럽지만 따뜻한 모자를 손수 뜨개질해 건네주는 엄마,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여동생 린지, 유머를 잃지 않는 외할머니, 막내 동생 버클리 등 이들은 죽은 수지의 숨결을 느끼며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간다.

특히, 죽은 언니의 빈자리를 채워야하는 부담감에 방황하는 여동생 린지가 영화 중반에서 수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활약이 눈에 띈다. 영화는 수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린지가 하비의 집에 몰래 들어가 범행의 결정적 증거를 잡는 장면으로 잔잔한 영화에 긴박감을 부여한다. 이 장면은 범인이 밝혀짐으로써 상처를 안고 뿔뿔이 흩어져있던 가족들의 마음이 다시금 하나의 축으로 모이는 계기가 되고, 수지도 아픔을 치유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 영화 '러블리 본즈' 한 장면  



소설에서 수지는 하비의 집을 무사히 탈출한 린지를 보고 이보다 더없는 축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소녀는 “전망대에서 나오는데, 두려움 때문에 몸이 떨렸다. 린지를 잃으면 아버지, 엄마, 버클리, 새무얼에게만 큰 상실이 아니라, 내게도 큰 상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수지는 사방에서 모여든 소녀와 함께 천국의 올리브 나무 아래로 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녀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조금씩 아픔이 줄어듦을 느낀다.
 
 
▲ 영화 '러블리 본즈' 한 장면


 
열네 살 된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사랑과 상실, 그리고 희망을 다루고자 했다는 작가 앨리스 세볼드. 죽음 이후의 신비로운 세계에 궁금증을 갖고 있는 관객들에 희망의 메시지와 테마를 안겨주고자 했다는 피터 잭슨 감독.

지옥과 희망의 공존을 공통되게 이야기하지만 각자의 개성과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두 작품이 올 봄 독자와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
 
toward2030@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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