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풍물굿
새해맞이 풍물굿
  • 신금자
  • 승인 2007.01.22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 신금자     ©독서신문
병술년의 마지막 밤 11시경이었다.
묵호항 새해맞이 풍물패가 어촌의 세밑 추임새로 떠들썩했다. 마을을 한바퀴 두들기며 구경꾼들을 모아 해변에 차려진 굿판으로 오르고 있을 때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하늘 가운데 달이 떴다. 언제 떴는지 달이 떠오를 시간을 가늠하고 본 사람은 없으리라. 오로지 오늘 이곳 동해로 몰려온 사람들은 다음날인 새해 해돋이에 들떠 있을 뿐, 달은 안중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달이 있는 쪽 하늘에 얇은 구름이 강강술래를 하듯 달빛을 꺾어 에워싸고 있다. 세모의 밤, 꽁꽁 언 달의 시린 호흡으로 달무리가 섰다.


 어느 새 화려한 진풀이는 아니지만 커다란 깃발을 든 만장수 뒤로 상쇠가 풍물판을 이끌어 나갔다. 전통적인 농악인데 지역마다 가락이나 타법이 많이 다르다. 우리의 풍물은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함께 호흡하며 절로 흥겨움을 돕고 돋우는데 있었다. 상쇠가 한바퀴 원을 그리며 원진을 짜고 나서 원안으로 빠져버리자 부쇠가 역시 꽹과리 가락을 정박으로 치며 따르는 치배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판 전체의 호흡을 조절해 주는 듯 했다. 전체 지휘자인 상쇠가 원안으로 빠지는 것은 다른 치배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함이나 중앙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부쇠가 치는 가락에 맞추어 그 빠르기 등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러니 보조자인 부쇠와 상쇠의 호흡도 볼거리였다. 악기를 치다보면 점점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징을 가진 징쇠가 큰 박을 딱딱 잡아주면 그걸 듣고 맞추어 나간다고 한다. 첫 가락도 징소리로 시작하였다. 하여 풍물굿의 모든 리드는 상쇠, 부쇠, 꽹쇠, 징쇠의 쇠치배들이 하지만 뒤에서 흥을 받혀주는 장고, 북, 소고의 가죽치배들의 역할이 없다면 신명이 나지 않아 볼품이 없을 것이다. 얼핏 이 곳이 영동이라 영동 풍물굿인 듯도 하다. 영동 풍물굿은 빠른 가락이 제격이라 대개 힘이 있고 남성적이라 하였다. 역할들은 꽹과리, 북, 징, 소고, 태평소 등으로 공연하는 인원에 따른 굿판을 짠다. 특히 꽹과리의 타법이 일품이란다. 필자는 풍물굿이나 사물놀이가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딸이 대학에서 제일 먼저 해보고 싶었다던 풍물패 동아리에 들었다. 아울러 유년에 자주 접했던 농악놀이라 관심을 두고 보니 크게 어렵지 않고 재미도 있었다. 순수 혈통의 농악놀이를 두루 아우른 것이 풍물굿이라면 1970년대 전통적 풍물굿의 가락을 무대공연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 사물놀이였다. 꽹과리, 장고, 북, 징의 사물만으로 다양한 시청각에 중점을 두고 발전시켰다. 덕분에 우리 민속이 세계무대로 진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등 우리 시대에 걸출한 전리품이긴 하되, 풍물굿만큼  열린 공간이 아니어서 신명난 굿판의 한계를 극복할 전략이 절실하다하겠다.


 풍물패의 굿이 모듬북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고 잦아들자 새해 축포를 터뜨려 밤하늘을 수놓았다. 밤이 깊어지니 바닷바람이 차서 숙소로 오려다 만난 굿판의 막걸리와 숯불에 구운 빙어 맛이 기가 막히다.
 아침 7시 희번할 때 잠포록한 바닷가로 또 나왔다. 일출 시각 7시25분을 훌쩍 넘겨 날은 흐리지만 훤해졌다. 바다안개 길게 깔린 물길 끄트머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낯설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가. 어쩌다 구름 깊숙한 곳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터지면 아아, 하고 또 붙잡히고 만다. 쉬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조금 더 기다리면 둥실 떠 오른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봐 미련을 딱 자르지 못한다. 어젯밤 달무리 탓도 있을 것이다. 끝내 붉은 빛 한 줄기에 소망을 묻고 묵호항 곰치국밥집으로 총총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