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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산정상의 맛은 이렇다. 산의 정기가 흐르는 곳에서 산줄기가 끊어진 지레목을 짚어간다. 가까이 혹은 먼빛으로 선 산 너머 산, 또 그 너머까지 끊어질 듯 잇고 있어서 미덥다.
언제부턴가 저렇게 서로 어깨를 겯고 드러누운 산골짝이 무리지어 날고 있는 재두루미의 나래로 보인다. 골안개를 가르고 “뚜루루루 뚜루루르~” 하늘 높이 퍼지는 울음소리 내게 닿는다. 날아다니기에는 다소 육중한 몸이지만 큰 울음소리로 대기를 제압한 것일까, 긴 수평으로 날고 있는 평형감이 숫제 눈부시다.
어느 곳에서는 펑퍼짐한 어머니의 젖무덤이기도 하다. 물린 젖을 먹다말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기대고 누워서 간지럼을 태우면 높쌘구름날개를 후다닥 개켜서 어디든 슝- 나를 태우고 날아가 줄 것도 같다. 어쩌면 어머니가 학을 타고 날아다닌다?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그리움이다. 그래서 가끔 산에 오른다. 산마루가 좋다. 산마루에서 보면 하루하루 조바심 내며 일구는 저 아래의 세상은 아주 작은 알갱이가 아니랴. 한사코 높이 올려보느라 힘에 부치고 어지럽다. 산은 스스로 가난하여 사소한 일에 목청 높이지 말라한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산마루에서 보면 정말 사소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자연은 보이는 대로 느끼고 그리 살기를 바라지 않을까.
“산에서 길을 잃으면 골짜기를 헤매지 말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길이 보인다. 무슨 뜻인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방향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인다. -전병욱의 ‘영적강자의 조건’ 중에서-
흐린 날씨에 산새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비감을 주었던 서래봉이 내장사 뒤에서 이중삼중 엄호하고 있다. 써래봉 암벽이 무논에 써래질하다 세워놓은 형상이라 세로줄기에 양감이 서렸다.
비교적 넓은 절 마당에 우뚝한 ‘진신 사리탑’도 땅거미 속 기품이어서 더 아려하다. 가히 세계적인 내장사의 단풍은 늦더위로 푸른 기가 밀려나지 못하고 어설프게 섞였다. 내장사 다릿목으로 흘렀던 계곡도 긴 가뭄에 물소리를 잃고 하얗다. 얼마간은 밤마다 이슬 머금은 단풍비를 맞으며 마른 바람을 잠재우리라. 맞받이 산책길은 여유롭고 호젓하다. 낙엽 속에서 동무들과 뒹굴던 시절이 생각나 살짝 장난기가 발동하려는 걸 참았다. 아니, 거기 낙엽 내리는 나무의자에 좀 걸터앉아 볼 참이었다. 6시간여 산행으로 지친 팔다리가 그 벤치를 간절히 원했지만 일행 중 꼴찌로 내려왔기에 사진 두어 컷 찍고 서둘렀다.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어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무명-
내장사의 단풍은 나뭇길로 오느라 좀 늦다. 딱히 머물 곳도 정해두지 않지만 떠날 때를 보다 소중히 하는 나뭇잎들은 색색으로 단장을 하고 있다. 낙엽이 한 잎 한 잎 떨어질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가슴 속 뻥 뚫린 곳의 바람을 막고 온기를 채우려 가으내 든 빨간 멍을 다독여줄 첫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