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문장 속, 저마다의 특징 보여줘
담백한 문장 속, 저마다의 특징 보여줘
  • 이호
  • 승인 2009.12.30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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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소설가의 『강산무진』
▲ 김훈 소설가     © 독서신문

강산은 끝이 없다. 그 강산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다. 인간은 유한(有限)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렇다면 끝없는, 무진(無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유진(有盡)한 인간은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소설 「강산무진」에서 주인공은 암을 선고 받는다. 그런 주인공이 자신이 살았던 세상을 하나씩 정리하며 과거 추억들을 되짚는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기자 출신인 김훈의 문장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담백한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그 이유일 것이다. 쓸데없는 기름기가 쫙 빠진, 잡스러운 것들이 하나도 없는 문장들. 그러면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풍족한 표현들이 바로 김훈 문장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두 가지 다른 것의 대비는 김훈의 문장에 고유한 색을 입히고 힘을 싣는다. 다른 것끼리의 대비지만 그것이 이질감 없이 읽히는 것은 역시 그의 문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것을 골라 분리시키는 것은 쉽지만 서로 다른 것을 넣어 적절하게 섞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훈의 소설은 연속성을 갖는다. 단편 소설에서는 짧은 문장이 주를 이루어야 하지만 긴 문장이 효과를 볼 때도 있다. 그런 긴 문장을 만드는데 좋은 방법은 연속이다. 비슷하거나 대비되는 여러 개의 의미를 연속시켜 만든 문장은 짧은 문장이 갖기 힘든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강산무진도’에서 주인공이 느낀 것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이 소설의 주제를 담은 문장 역시 연속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상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고, 화가가 제 어미의 태 속에서 잠들 때 그 꿈속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고, 먹을 찍어서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종이 위에 숨결을 뿜어낸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그림. 그 알 수 없음이 연속되는 그림 속 풍경이 내가 혼자서 가야할 풍경처럼 느껴진 것이다.

‘알 수 없는’ 연속은 내가 가야할 길이며 간다는 것 역시 연속이다. 연속의 연속. 무한 속에서의 연속과 유한 속에서의 연속이 대비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 혼자서 쓸쓸히 가야할 알 수 없는 길을 남겨둔 주인공의 심리가 연속으로 계속되며 그 심리는 바로 허무이다. 무진(無盡)한 세상 속 유진(有盡)한 인간이 겪는 허무. 이 허무는 연속의 연속으로 더욱 짙어진다.

『강산무진』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강산무진」 이외에도 「배웅」, 「화장」, 「항로표지」, 「뼈」, 「고향의 그림자」, 「언니의 폐경」, 「머나먼 속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텍스트에서 다른 작품들은 굳이 다루지 않겠다. 소설의 구성이나 의미보다도 김훈의 ‘문장’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훈을 대표하는 문장들은 「강산무진」을 예로 들어 설명했을 뿐, 김훈의 글이라면 어느 작품에서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구성과 소재,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위에서 다룬 김훈 문장의 특징은 모든 작품마다 녹아있다. 그것이 ‘노래’ 시리즈처럼 장편이든, 장편의 초반이든 후반이든, 단편이든 가리지 않고 김훈 문장의 특성을 보여준다. 아마 그런 ‘어떤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는 문장력’이란 점이 김훈을 ‘소설가다운 소설가’로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생각하며, 소설가 중에서도 ‘대가’로 불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 이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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