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외딴 섬에 사는 한 무리의 도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생을 섬 밖에 나가보지를 못하고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몰려가 천지신명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들의 소원은 너른 뭍에 나가 평원을 마음껏 뛰어다녀도 보고, 산에 올라 소리라도 실컷 질러보는 게 소원입니다. 꼭 저희에게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길을 열어주십시오.”
이들이 이 소원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몰려와 아뢸 뿐만 아니라 그 기원이 너무 간절해 하루는 이들을 동정한 신통한 능력을 가진 한 도사가 그들 앞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자니 너희들의 답답함이 오죽하겠느냐. 그러나 그것이 너희의 업보에 따른 것이니 어쩌겠느냐.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희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뭍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줄 테니 잠깐 나가 구경을 하고 오거라. 단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큰 재앙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꼭 유념하고 다녀오는 것만으로 만족하도록 해라” 하고 그들에게 뭍 구경을 시켜주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음에 감탄하며 산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물가로 나와 첨벙거리기도 하며 하루를 꿈속에서 노닐 듯 마음의 회포를 풀고 돌아왔습니다. 그곳은 경치뿐만 아니라, 산나물이며 해산물 등이 풍부해 말 그대로 꿈의 낙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이후, 그 낙원을 어떻게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없을까 해 머리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그들은 나름의 결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낙원의 땅을 애초부터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기로 마음을 모은 것입니다.
그런 그들 앞에 답사(踏査)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도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 나들이는 즐거웠느냐.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또 열심히 살도록 하거라.”
“도사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그 아름다운 낙원에 우리가 가서 살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곳은 이미 주인이 따로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왔어. 어찌 남의 것을 너희가 취해 그곳에서 너희들이 살겠다는 것이냐. 염치가 있어야지.”
“아닙니다. 그곳은 원래 우리의 것인데, 그네들이 우리를 이 외딴 섬으로 내쫓고 그들이 점령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감안해 우리가 그 땅에서 살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내가 너희들의 그런 심보를 이미 알고 있으나 꼴이 불쌍해 나들이를 하게 했던 것인데, 역시 너희는 제 버릇 버리지 못하는구나. 고얀 것들, 어찌 네 욕심을 채우겠다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도록 하느냐.”
도사는 신통력을 발휘해 물을 끌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을 물 속에 잠기게 하고, 해일을 몰아다 그들의 심보에 매질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아름다운 곳을 잊지 못하고 죽어가면서까지 외쳤습니다.
“그곳은 원래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네들의 땅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머잖아 그네들의 심보도 물 속에 가라앉을 것입니다.
일본의 망언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또 한번 더 해묵은 소용돌이에 휘말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런 망언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약자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만, 강자 앞에서는 갖은 아양을 다 떠는 것이 그들의 처세 원칙이니까요.
하찮은 말싸움에 휘말린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분별력이 없는 그들에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구경하러온다는 미명아래 몰려와 별의별 소란을 다 칠지 모르니까요. 독도로 들어다 남해나 서해로 가져온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니, 그들이 그런 헛소리를 못하도록 혼내주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국민들의 뜻을 헤아려 정치한다고 하는 분들이 마서 파수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연히 가 굽실거리지 말고요. 또 땅 장사할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국민들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 정신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요.
독서신문 1378호 [200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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