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값을 다 받으려고 하는 거죠?”
“왜 책값을 다 받으려고 하는 거죠?”
  • 독서신문
  • 승인 2009.12.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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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도서정가제’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한 서점 직원이 자신이 일하는 서점의 발전에 일조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서점을 이용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이 어떤 것인가요?” 여러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자 한 사람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다음이었다. “책이 너무 비싸요. 그래서 서점을 이용하는 데 가장 큰 불편을 겪어요.”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사실 이것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의 솔직한 속내다. 어린이 책들도 기본적으로 8천원부터 시작해 1만원을 웃도는 가격을 보이고 있으며 성인들이 읽는 단행본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1만2천원에서 그 이상 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값을 할인해주고 다양한 마일리지 혜택으로 독심(讀心)을 붙잡고 있는 인터넷 서점은 독자들을 계속 유치하고 있지만 이러한 서비스에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오프라인 영세 서점들은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10년 새 오프라인 서점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이 종이책 기반의 출판 산업이 97년 4조원 시장에서 10년 만에 약 2조5천억 원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종이책은 점점 쇠하고 전자책은 점점 흥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열린 ‘소비자 경품규제 폐지에 따른 도서정가제 정책방안 토론회’는 현재 출판계가 ‘도서정가제’에 얼마큼 민감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책값을 다 내고 사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왜 도서정가제로 논란이 일고 있나?

‘도서정가제’란 말 그대로 ‘도서를 제 값을 내고 사서 보도록 하자’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 2월부터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이 계속되면서 학술과 문예 분야의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기 시작하자 이를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 이후 지난 7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경품류 제공에 관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를 개정(공정위 고시 제2009-11호)해 소비자 경품 관련 규제를 폐지했고 간행물에 대한 소비자 경품 관련 규제는 2010년 6월 30일까지 유예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품이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자들의 재 구매를 유도하는 각 서점들의 마일리지 적립을 의미한다. 간행물에 대한 소비자 경품 규제가 폐지되면, 즉 가격 할인이외의 마일리지 적립 등의 서비스가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른 도서정가제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출판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값을 할인하는 것이 왜 이토록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출판계는 이에 대해 영세서점과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사이에 동등한 경쟁구도가 성립되지 않는 점을 든다.

『문화를 살리는 힘 도서정가제』에서 안찬수 책읽는 사회 사무처장은 “현재 총합으로 보면 19퍼센트까지 책에 대한 할인과 경품이 가능한데 문제는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것보다 더 할인하고 뭘 끼워주기도 한다는 것”이라며 “오프라인에서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논리의 입장에서 보면 독자들은 아무래도 더 할인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마련이므로 이러한 서점의 시스템 자체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온라인 서점만 문제는 아니다’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변하는 시대에 맞춰 영세서점의 자구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문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6일 열린 토론회에서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경품규제 폐지에 대해 “도서 구매에 대한 마일리지 제공은 인터넷 서점에 있어서는 고객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하나의 마케팅 방법”이라며 “이러한 마일리지를 없애자는 것은 인터넷 서점의 마케팅 방법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출판사와 각각의 서점들이 모두 상이한 입장과 목소리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도서정가제 논란의 중심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온·오프라인 서점의 상생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고 이것이 문제의 시발점으로 점철되고 있다.
 
 
■도서정가제, 독자 외면하는 것 아닌가

대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복사집’이다. 대학생들이 수업에 쓰이는 교제를 사지 않고 복사가게에서 제본을 하거나 해당되는 페이지만 복사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다. 왜 교제를 사지 않느냐고 물으면 하나 같이 ‘책값이 너무 비싸서’라고 답한다.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대개는 현재 책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출판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책값이 비싸다는 것은 둘째 치고 소비자들이 출판계에 대해 갖는 신뢰가 부족한 것이 더욱 문제점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만원하는 단행본이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1만원도 거품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터넷 서점에 가면 1만원인 책도 할인하고 마일리지를 쌓아주면서 싸게 판매하는데, 이렇게 해도 남는 게 있기 때문 아니냐’는 논리를 적용해 ‘결국 현재 책의 정가는 거품 투성’이라는 불신을 낳았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는 ‘소비자를 외면한 출판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진다는 설명이다.

사실 책값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생산자가 직접 정한 책의 가격을 그대로 소비자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도서정가제인 만큼 책값을 어떻게 매기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안찬수 사무처장은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출판계 대부분은 독자들이 책을 일시적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부족한 부분은 낮은 저작료 채택, 책의 질 저하 등으로 반영되며 혹은 다른 책값을 올려 받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 결국 모든 피해는 소비자가 받게 된다고 말한다.

조월례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소비자들은 이러나저러나 제값을 다 주고 사는데 정가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결국 주변의 문화적인 여건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책은 상품 이전에 문화다

도서정가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상품을 어떤 재화로 볼 것인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책을 샴푸나 비누와 같은 일반적인 소비재로 본다면 자유경쟁체제로 가는 것이 맞지만 출판 관계자들은 대개 책은 상품 이전에 ‘문화’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다른 모든 상품은 자율경쟁을 택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도서정가제는 거꾸로 가는 것”이라며 “그렇게까지 해줬는데도 출판계와 서점계가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게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지금 시장은 가격에서 완전히 자율경쟁인데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책 가격만 정가제로 묶어놓은 것은 문화를 살리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덧붙였다.

정일근 시인은 『문화를 살리는 힘 도서정가제』의 머리말을 통해 “공정무역은 공정거래다. (중략) 도서정가제 정착은 이 같은 공정무역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1만원을 주고 사야 하는 책이면 공정한 거래로 1만원에 팔고 사야 저자와 출판사, 서점이 다함께 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불공정거래는 결국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죽인다. 우리가 우리를 죽인다. 무릇 책 속에 사람의 길이 있다고 했는데 책의 길을 도서할인제가 죽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서정가제는 사실 최근에 떠오르는 논란이 아닌 만큼 그 해결점을 찾기 위해 여러 출판관계자들이 수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점차적으로 완전정가제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 시점에 출판사와 서점 등 출판계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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