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을 찾아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을 찾아
  • 이병헌
  • 승인 2006.11.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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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시인 · 소설가 , 임성중 교사)

▲ 이병헌     ©독서신문
늦가을 햇살이 맑게 내리는 날 '향수'의 시인 정지용을 만나기 위해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옥천 정지용 생가에 닿았다. 정지용 시인은 옥천에서 태어났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모교의 교사로 재직했고, 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는데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참여하다가 전향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고 한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고 한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정지용 생가는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가다가 청석교 건너에 위치해 있었다.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길을 잡아 청석교를 건너면 ‘향수'를 새겨 놓은 시비와 생가 안내판이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이 정지용 생가인데 바로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아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자동차를 정지용문학관 주차장에 주차시키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시인 정지용의 상(像)이다. 그 앞에 마을 이이들이 천진스럽게 놀고 있었는데 참 자연스러웠다. 정지용 문학관은 옥천군이 10억원을 들여 하계리 생가 옆 연면적 130평으로 건축되어있는데 전시실과 낭송실 창작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마침 인천의 한 문학단체에서 문학기행을 온 상태여서 옆에서 도우미의 설명을 들으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전시실 인구엔 밀랍으로 만들어진 정지용이 의자에 앉아있는데 관광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에는 그의 일생과 그의 작품 그리고 그의 작품이 실린 문예지 등이 전시되어있었고 그의 시가 낭송되어 헤드폰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고 낭송실에서 낭송이 가능했고 창작실에는 우리나라 유명 시인들의 육필시를 만날 수 있었다. 작은 문학행사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 놓아서 문학인들에게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은 나와 실개천을 따라서 생가로 다가가니 대표시 ‘향수’에 등장하는 실개천과 돌다리 등이 복원되어있었고 그의 시 '향수'시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생가는 199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었고 문학관 개관과 더불어 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정지용 생가는 두개의 사립문이 있다. 하나면 족할 것을 두개씩이나 문을 낸 뜻은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또는 한 개의 문으로 드나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또 생가의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하니 물레방아의 모습도 나그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곳을 나와 육영수여사 생가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그 곳으로 향했다. 마을길을 달리는데 옆 논에는 짚단이 누려져있어 농촌의 가을이 깊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 고(故) 육영수(陸英修) 여사 생가가 복원되고 있었다. 굳게 잠긴 문 사이로 복원중인 건물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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