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인 연재소설
[독서신문] 김나인 소설가 = 시무룩하게 경청하던 환자들은 소년의 말에 긍정을 하듯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끄덕이었다. 소년이 전혀 다른 말을 했더라도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었을지 모른다. 소년은 삭발한 두피를 쓰다듬으며 머쓱해하였다. 한 편으로는 자신의 말을 조용히 경청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다. 자신이 폐가에 감금되어 살던 지난날, 소년은 그 누구와도 대화하거나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해 본적이 없었다. 벙어리나 마찬가지이었다. 원시인처럼 상용 문자를 쓰고 추상적인 몸짓뿐이었던 그가 몇몇의 사람들 앞에서, 아니 자신의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에게 일장연설 하듯 막힘없는 말로 늘어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기분은 묘한 가운데서도 기뻤다. 경청하는 타인들에 의해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보호사의 한 마디에 시무룩해지는 소년이었다. 사회보호사는 차트에 소년의 말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해 나갔다. 그 기록된 내용은 대강 이렇다.
<나는 밥을 좋아한다. 매일 짬뽕을 먹었다. 숙부가 사준다. 좋다. 거추장스러운 옷이 싫다. 발가벗고 싶다. 이곳이 싫다.>
사회보호사의 귀에는 더듬거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소년의 어눌함 뿐이었다. 주치의나 간호원들이 기록 차트를 읽을 수 있도록 문장에 맞게 적었을 뿐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지 않았다.
차트를 넘겨보던 사회보호사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안드레아 정신병원에 환자들이 수감되면 기본 인적사항 및 증상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기록되어있다. 누락이 되었는지 최다솜의 기본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빈칸만 보일 뿐이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고 직감했지만 상담시간에 그녀의 정보를 취합하는 자체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상담적인 분위기도 무너지고 조금의 틈만 주면 어수선해지거나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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