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그램(큐브의 수수께끼) 16회
아나그램(큐브의 수수께끼) 16회
  • 김나인
  • 승인 2009.09.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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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인 연재소설
[독서신문] 김나인 소설가 =  최다솜은 말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저들은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제는 저들이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불만이나 하소연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이젠 실증이 난다고. 그리고 네 삶이 정글보다 못한 것은 알아. 너와 숙부의 잘못도 아냐. 운명의 탓이라고. 억울하거나 원망도 하지 마. 아픈 과거를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네 자신 밖에 없으니까.」

최다솜은 화가 치밀었는지 퉁명스럽고 짜증스럽다는 듯 강한 어투로 말했다. 사회보호사의 귀에는 조진행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음이 불명확하였다. 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한글 자체도 모르는 바보스러운 소년이었을 뿐이다.

사회보호사는 차트를 손끝에 침을 바르며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꼼꼼히 살피며 말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그러나 과거에 너무 집착하며 산다면 미래는 없을 거야. 그렇다고 과거가 더 나은 미래를 보상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는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타인을 희생시키기도 하지. 희생당했다고 보복 같은 것은 아예 꿈을 꾸지는 마. 고진감래라고 했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이지. 아픔도 마찬가지야. 그 아픔을 딛고 더 성숙하려고 노력한다면 희망이 보일거야. 현재로서는 네가 노력해야 될 부분은 모국어를 배우는 거야. 오랜 원시적인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언어를 잃어 버렸어.」

사회보호사는 강직한 보모가 말하듯 딱딱한 어조로 소년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며 무슨 상담과 치유가 가능할까 자문도 해 본다.

「간혹 내 거처가 그리울 때도 있어. 폐가 안에 쓰레기더미와 파리와 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풍겨도 나는 자유로웠거든. 피안의 세계와 같은 곳이었어. 누구의 간섭과 관심도 없이 홀로 이방 저 방을 기웃거리다가 배달된 음식을 먹고 배설물을 아무데나 싸고 졸리면 자고 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제한된 공간에서 나의 판단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이곳에는 환상이 없거든.」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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