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친구 먹물친구
단풍친구 먹물친구
  • 신금자
  • 승인 2006.11.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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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가을 햇살이 좋아 집 근처 산길을 걸었다.
단풍은 주로 노란색, 붉은색, 갈색으로 구별하지만 이 감빛 가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절연이 없듯, 어디서 어디까지가 붉은색이라든지 노란색이란 선을 그을 순 없지 않은가. 여러 가지 색이 혼합된, 그 물들어가는 모양도 제각각 다르다. 자세히 보면 낙엽수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록수의 잎도 살짝 단풍이 든다. 가을에는 새 잎이 붉은 빛을 띠고 나와서 그대로 머물다 겨울엔 다시 제 빛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뭇, 햇살에 비친 단풍의 붉은 빛에 끌려 황급히 얼굴 붉히는 나무도 곱다. 이내 떠날 채비를 하며 서두르는 산벚나무에게 가까이서 말없이 지키던 잣나무의 눈시울에도 붉은 빛이 돈다. 작은 풀씨 무수히 밟히는 논두렁밭두렁 저 멀리, 산허리에 산행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단풍과 잘 어울린다.

 단풍을 보며 ‘좋은 친구, 나쁜 친구’의 지란지교(芝蘭之交)가 생각난다.
공자 왈, 선한 사람과 함께 살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다고 하였다.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즉, 좋은 사람에게 동화되어 닮게 된다는 뜻이다.
 산도 자주 오르다 보면 점차 무던해지고 욕심을 조금씩 덜고 일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니 자연이 주는 이치는 아무도 모르게 옮는다. 하지만 어질지 않은 사람과 같이 지내면 물고기를 말려서 파는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다하였다. 생선이 말리는 중에 악취가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니 이 또한 그 좋지 않은 사람과 동화된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악에 물들기 쉬움을 뜻한다. 누구나 지란지교의 지초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을 원할 것이다. 또 하나,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 있다. ‘먹을 가까이 하게 되면 검어지고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은 물이 든다’ 는 고사성어다. 먹을 갈고 붓글씨를 쓰다 보면 언제 어떻게 묻었는지 모르게 몸이나 옷에 먹물이 묻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오롯이 받는다. 그러니 어질고 무던한 사람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함께 거처하는 사람을 삼가야 한다.
쑥이 최고로 자라면 허리춤 정도까지 자랄 수 있지만 키 큰 삼나무 밭에 심으면 삼나무를 따라 한자씩 쑥쑥 자라난다고 한다. 삼밭에 자라는 쑥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쑥쑥 자라듯, 분명 주변 환경에 따라 바르게 잘 성장할 수도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고운 단풍지절에 고이 끼워뒀던 책갈피단풍잎 다루듯 마음속에 잘 새겨둔다.

 가장 아름다운 단풍은 기온이 뚝 떨어지지 않고 서서히 떨어지는, 그러면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한 곳에서 볼 수 있단다. 날씨가 아주 맑고 공기 중에 물기가 적으며 싸늘한 때에 물들기 시작하고 햇빛이 많으면 더욱 예쁘게 물든다한다. 우리 나라도 흐린 날이 많거나 기온이 급작스레 떨어지면 단풍이 곱게 들지 못하고 낙엽으로 떨어져 버린다나? 따라서 우리 나라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지는 천혜의 조건이다.
 늦더위 탓에 나뭇잎이 모두 제 빛을 띠기에 아직 이른가. 그러나 산책길에 주(朱), 적(赤), 홍(紅),  단(丹)이 다 모여 웅성거린다. 지란지교의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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