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의 문화적 도량
소쇄원의 문화적 도량
  • 신금자
  • 승인 200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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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 독서신문 편집위원 겸 칼럼리스트]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기 양산보가 조성한 곳으로 그의 호인 소쇄옹에서 따왔고 ‘맑고 깨끗하다’ 는 뜻이 담겨 있다.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모함을 당해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아예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창암촌 계곡에 정자를 짓고 자연인으로 묻혀 지냈다.
 소슬한 대나무밭 깊이 숨겨진 작은 계곡과 원림에 주인이 머문 제월당과 사랑방 광풍각이 있다. 그 두 정자에서 손님을 맞고 지냈을 선비의 절의가 흘렀다. 무시로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의 화답도 고고하다. 돌고 또 휘감아 돌아 다섯 번을 돌아내린다는 냇물이다.
 소쇄원은 도처에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골짜기다. 그 자연 풍광을 그대로 둔 채 더러 흙돌담을 치고 계곡 언저리에 정자를 바쳐놓았다. 사방팔방으로 트인 자연을 모두 누릴 수 있어 처사들의 요람이 되었던 듯하다. 산수가 빼어나지 않아 마음을 어지럽힐 일 없어 좋고, 사철 물소리에 무심치 않은 계곡을 벗 할 수 있어 좋고, 훤칠한 대숲에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이 있어 좋다. 어떤 날은 너럭바위에 부려놓은 나를 일으켜 고무신으로 가재 잡기에도 그만이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계곡은 마음에서 비롯되나니 이 곳이 곧 금강산이요 무릉도원이라.
 올여름처럼 잦은 비도 이 곳에선 볼거리다. 폭포수와 물보라는 메탈음악에 비길 바가 아니다. 불어난 물이 바위를 치며 튀는 소리에 가슴이 요동치지 않겠는가. 행여 지나가는 비바람에 대마디 타다닥 부딪는 소리 들어보았는가. 산울타리에 걸린 푸릇한 선비의 퉁소소리 듣고 가지 않으려는가. 푸나무서리로 자연이 내는 이 소리와 잘 지내고 싶다. 함께 소리도 내고 싶다.
 옛사람들은 시를 쓴다고 하지 않았다. 제목도 없이 소리와 억양을 넣어 읊조렸다. 가객(歌客)이었던 셈이다. 시를 읊으면 마주앉은 사람은 눈을 지그시 감고 완상하였다. 소쇄원도 그런 곳이다. 시, 서, 화는 가만히 보고 듣는 중에 떠오른다. 주인 양산보는 제월당 온돌방에 책과 붓, 벼루, 먹과 화선지를 늘 비치해 두었다. 그런 배려 때문인가. 소쇄원에 먼 길 마다않고 도량이 큰 선비와 학자 그리고 문인들이 많이 들고 났다. 그 시절은 오로지 두보와 이백 등을 공부하고 그 시문에 눌린 중국풍 일색이었다.
 그 그늘을 박차고 국문시가인 가사문학(歌辭文學)이 선을 보였다. 이서(낙지가), 송순(면앙정가)을 필두로 정철(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남극엽, 유도관, 남석하, 정해정, 양산보 등 담양권이 한국가사문학을 꽃피웠다. 이처럼 우리의 말과 글로 진경의 가사문학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교류가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김성원, 퇴계 이황, 김인후, 기대승, 임억령, 등 모두 의리와 명분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로 역사의식에 있어서 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대나무들 같다. 그래서 정치와 현실을 거울 비추듯 동일시한 그들의 발자취는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사색할 사료 중엔 자연에 넋을 잃은 물아일체(物我一體)도 많았다.
 
 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찾아보았다.
퉁소, 대금, 피리는 비록 성대한 음악성은 없어도 마음으로 그윽한 정서를 전하기에 넉넉하다했다. 죽죽 곧은 대숲으로 열린 하늘을 보면 넉넉하고 밟고 있는 땅엔 만물이 무성하다. 마음껏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어서 또한 기쁘다.
-  담양 소쇄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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