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등장한 작가 박민규가 3년 만에 장편소설『핑퐁』을 발표했다.
박민규 작가는 주로 비주류 인생들의 삶을 그리며 본인 스스로 낮은 곳에 임하고 있으나, 이제 더 이상 그는 비주류가 아니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고, 한국문단이 주목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작가 본인은 이에 대해 별 관심 없다는 듯 무덤덤하지만, 오랫동안 그의 장편소설을 기다려왔던 독자들에게 그가 내놓은『핑퐁』은 올 가을 가장 반가운 선물이다.
▲ 박민규 작가 |
『핑퐁』은 왕따 소년 못과 모아이의 이야기다. 못은 치수가 머리를 때릴 때 멀리서 보면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고, 모아이는 남태평양 어느 섬에 있다는 수수께끼의 석상과 닮아서 붙은 별명이다.
못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 같은 거 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그러나 치수는 못을 꼬붕, 밥, 오르골, mp3, 플레이어, 경보기, 애완곤충, 핸드백, 쌘드백 취급을 하며 못의 소박한 꿈을 짓밟는다. 기성세대와 세계는 다수에 속한 척 가장하며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에 물들어 폭력과 부조리를 외면한다. 그래서 못은 치수에게 짓밟힌 꿈을 다시 일으킬 희망조차 갖지 못한다.
어느 날 못과 모아이는 벌판에서 탁구대를 발견한다. 탁구를 치면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소리가 나고, 이상하리만치 경쾌한 기분이 들어서 둘은 탁구를 치게 된다. 그리고 탁구용품점<랠리>의 주인이자 ‘탁구계의 간섭자’ 세끄라탱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고비 때마다 탁구게임으로 좌지우지 되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커다란 탁구공이 나타나 지구에 안착하고, 그 순백의 공간에서 세끄라탱의 주재로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탁구경기가 시작된다. 인류가 깜박한 못과 모아이와 경기를 할 인류의 대표는 스키너 박스에서 탁구를 배운, 다수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먹고살기 위해 시스템에 길들여진 쥐와 새다. 며칠 동안 계속 된 경기 끝에 못과 모아이가 승리자가 된다. 못과 모아이는 인류를 유지할 것인지, 언인스톨(포맷)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 동안 인류가 외면해온 왕따 소년의 판단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결정된다.
『핑퐁』은 저자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경쾌한 문체 때문에 쉽고 재밌게 읽히지만, 이야기 속에는 인류의 은폐된 폭력과 부조리가 묻어있다. 역시 박민규 작가는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박민규 지음/ 창비/ 260쪽/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