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길 위의 소녀
  • 독서신문
  • 승인 2009.07.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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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존재가 아닌 늘 배우는 존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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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 배우는 강연을 통해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봉사활동을 많이 하시는 걸로 정말 유명하신데요. 저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이런 활동들이 지칠 때가 있어요. 장기간 봉사활동을 하시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나태해 질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하세요?”

그 배우는 책도 출간한 터라 책에 대한 중복된 질문이 난무하던 사이 나온 이 물음은 참으로 신선했으며, 때문에 당연히 주위에 있던 다른 독자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배우의 답변에 귀 기울였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저는 그럴 때면 봉사 활동을 좀 쉽니다’ 라든지 ‘주위에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조언을 구하죠’ 등의 대답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뜻밖에 그의 입을 통해 나온 한마디는,

“저도 그럴 때가 있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계속 준다고 생각할 때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사실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들에게 주는 것보다 그들로부터 얻는 게 더 크거든요. 전 물질을 주지만 그들은 제게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주죠. 그것을 깨닫고 나서는 봉사활동이 힘들다거나, 지친다거나 하지 않아요. 이 활동을 할수록 늘 얻는 게 많은걸요”

이 대답을 듣고 난 후 새삼스럽게 그 배우가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경외감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겸손하면서도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대한 감탄이었다.

사실 맞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이 내 것을 퍼준다고 생각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사람은 얻고 있는 것이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노인의 주름 접힌 수줍은 손,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순수한 눈빛, 이를 통해 우리가 돈을 주고는 결코 살수 없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남은 ‘돕는’ 것이다. 비단 ‘give & take’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아이들의 웃음이 값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그들의 겸손한 생각과 마음이 그 활동을 지속시키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의『길 위의 소녀』에 등장하는 주인공 '루'는 이런 귀한 안목을 가진 아이다.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진행하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어린 노숙자 놀웬(노)을 인터뷰하면서 더욱 그와의 관계가 깊어진 루는 과제를 위해 그를 만나지만 그 횟수가 거듭할수록 더욱 노와의 인연의 끊을 놓지 않는다.

결국 노가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을 보지 못하고 루는 부모님께 노를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 것을 제안한다. 뜻밖에도 부모님을 이를 승낙하고 그때부터 노와 루의 가족들의 동거는 시작된다.

그들은 노숙자인 노를 집안으로 들이며 그를 돕고 있지만 작품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정작 도움을 받는 것은 루의 가족들이다. 어릴 때 루의 동생 타이스를 잃은 루의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말수가 거의 없어졌으며 늘 먼 허공만을 바라보며 세월을 보냈다. 말이 없는 엄마, 그런 엄마를 돌보는 아빠, 그 사이에서 자란 노는 마음 한 켠에 자신이 타이스의 거대한 자리 때문에 밀려났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늘 지나치게 조숙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런 루에게 찾아온 노는 루의 마음을 꽉 채워주는 친구였으며 루의 어머니에게도 노는 그녀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대였다.

“엄마는 다시 잡지들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오고 전시회도 한두 군데 관람했다. 엄마는 옷을 갖춰 입고 , 머리손질을 하고, 화장도 하고, 매일 저녁 우리와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런저런 일화들을 이야기 한다”

루의 엄마는 이렇게 점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엄마가 제자리에 찾아오자 아빠도 본연의 위치를 되찾았다. 그렇게 노로 인해 한 가정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루와 노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간다. 늘 함께 할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다시 일상을 살게 된다. 하지만 소녀들은 큰 원을 돌아 제자리를 찾은 것인 만큼 다리는 더욱 튼튼해졌고 심장은 더욱 탄탄해졌다. 그렇게 한 뼘 성장한 루와 노는 독자들에게 마음에 살이 찐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마음으로 알려준다.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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