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헤아림
의심과 헤아림
  • 김성현
  • 승인 2006.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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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월간 선한이웃 발행인)



어떤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보면 하는 짓마다 수상하게 보이고, 미워하는 눈으로 보면 매사에 미운 짓만 하는 것 같다. 상대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상대방이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저절로 실현되는 예언 또는 자기 이행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현상이라고 한다.
의심에 얽힌 이야기는 참 많다. 자나깨나 의심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의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하는 이도 있다. 너무 둔해도, 너무 민감해도 안되는 영역이 의심이라고 하는 영역인데 필요한 경우가 있긴 하겠지만 의심의 시각을 너무 많이 갖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스릴러나 추리 영화 등에 보면 의심이 아주 중요한 기재가 된다. 일반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영역까지도 의심의 눈초리로 예리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남극일기>라는 한국 영화가 있다. 한국의 탐험대 6명은 세계 최초로 무보급 횡단을 통해 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도달 불능점 정복에 나선다. 6개월간 이어지는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 대원들은 마음이 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잃지 않았으나 감기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온도에서 대원 한 명이 감기몸살 증상을 보이다가 낙오되고, 구곳에서 집단 죽음을 맞았던 영국 탐험대원의 수상한 일기를 발견하며 혼란과 공포에 빠지기 시작하는 내용이다. 시간이 흘러가며 모습을 드러내야 할 ‘승리’의 고지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면서 대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초반의 아름다운 순백의 설원도 뒤로 갈수록 차갑고 섬뜩한 푸른 기운을 더해가며 밀실 공포를 일으킨다. 대체적으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영화는 한계에 이른 사람들이 갖는 불안과 의심, 광기 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일상에서는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던 일도 한계상황에서는 아주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심하게 되는 경우는 대개 자신이 알고있던 내용에서 벗어난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의심이나 폄훼의 의식은 커지는데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 세상에 장점만 갖고 있는 사람이 없듯이 단점만 갖고 있는 사람 역시 없다. 적을 만들지 않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미워하거나 의심하는 마음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듯이 상대도 나를 미워할 수 있으며, 내가 장점을 갖고 있듯이 상대도 잠재력을 갖고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애쓰며 상대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믿음을 찾아낼 때만이 의심의 함정에서 스스로를 건져낼 수 있다.
어떤 조직에서든 아직 인식의 깊이와 정도가 초보가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생리와 내용에 대해 질문이 많고 의아해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아직 헤아릴 기회가 없어서 깊은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조직에 불편을 주는 이로 의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와 정도가 있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 자신이 어느 정도의 지점에 있든지 다른 이들의 각기 서 있는 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르치려 하기보다 함께 가는 이들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필요하다. 툭히 경쟁이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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