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책]영화는 책을 좋아해~
[영화 속의 책]영화는 책을 좋아해~
  • 관리자
  • 승인 2006.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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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보면 등장인물이 책을 읽는 모습이나 책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책이 단순한 소품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책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영화의 주제를 의미하거나,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06년 4월에 나란히 개봉한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과 <매치포인트>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이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두 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죄와 벌』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죄와 벌』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서 영화를 본 소감이 다르지 않았을까 한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 『죄와 벌』

<달콤, 살벌한 연인>의 두 주인공 대우와 미나는 매우 독특하다. 우선 남자주인공 대우는 대학의 영문과 강사인데, 여자를 보는 눈이 너무 까다로워서 연애경험이 전혀 없다. 그리고 여주인공 미나는 대우에게 본인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미술학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전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계획살인을 저질렀고, 현재 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두 사람이 연애를 하게 된다. 대우는 연애 한 번 못해본 그 동안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미나에게 푹 빠져든다. 그리고 어느 날, 대우는 친구들에게 미나를 소개하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하는데,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나온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때문에 미나와 처음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대우의 친구 정화는 미나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자 자연스럽게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이야기를 꺼낸다.『죄와 벌』은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미나가 당연히 읽었을 거라 생각하고 말을 꺼냈지만, 미나는 당연히『죄와 벌』을 모른다. 그리고 분위기는 어색해진다. 옆에서 미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대우는 화가 난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머리에 든 게 없으면서 혈액형과 별자리를 운운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질문에는 죄다 동문서답이고, 혈액형이니 별자리니 그딴 소리나 해대고, 정말 도스토예프스키가 누군지 몰라요? 『죄와 벌』을 몰라요? 소설은 안 읽었어도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거 아닙니까?'
'옛날에 mbc에서 한 번 본 것 같네요.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고생하는...'
'그건 김희애가 나왔던 드라마 <까레이스키>고. 그걸 왜 기억해 지금! 그리고 미술전공이라면서 몬드리안도 못 들어봤어요?'
'내가 전공 공부를 좀 등한시한 편이에요.'
'당신 집 액자그림 그린 사람이 바로 몬드리안이에요. 몬드리안! 이태리 유학도 거짓말이죠?'
'이태리 갈 거예요.'
'무슨 디자인 학교 갈건데? '
'아직 안 정했어요.'
'전에 진짜 그림 그린 거 맞아요? 거짓말 했죠? 집에 있던 화보집 다 장식용이죠?'
'왜이래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은 교양의 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면『죄와 벌』정도는 당연히 읽었어야 한다는 암묵적 기준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미나는 책을 좋아한다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누군지,『죄와 벌』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물며 미술학도답게 서가에는 화보집을 잔뜩 꽂아놓고 거실 벽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걸어두지만, 그 그림이 몬드리안의 그림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결국 미나는 자신의 비밀과 거짓말을 모두 대우에게 들키게 된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본 관객들 중에서『죄와 벌』을 읽은 관객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까레이스키로 착각하는 미나를 보면서 마음껏 웃었겠지만,『죄와 벌』을 읽지 않은 관객들은 속으로 뜨끔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는 인터넷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검색해보지 않았을까?

▲ 영화 속 장면들

 

<매치포인트>와『죄와 벌』

영화<매치 포인트>의 감독 우디 앨런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그는 뉴욕 상류계급의 문화를 즐겨 담았고, 그의 영화에는 주로 신경질적인 뉴요커가 등장했으며, 영화상영 내내 재즈가 흘러나왔다. 또한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직접 출연하여 냉소 섞인 유머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우디 앨런의 영화<매치 포인트>는 냉소와 유머대신 쌀쌀한 기운이 흐르는 영국 상류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에는 재즈 대신 오페라가 흘러나오고, 신경질적인 뉴요커 대신 매력적인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크리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전직 테니스선수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큰 그는 오페라를 즐겨 듣고,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읽는 등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다. 크리스는 런던에서 영국 상류층 인사들이 이용하는 고급 클럽의 테니스 강사가 되는데, 거기에서 톰을 만나게 된다. 부잣집아들 톰은 크리스에게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차츰 크리스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대화 중에 크리스가 오페라를 좋아한다고 하자, 톰은 자신의 가족모임에 크리스를 초대한다. 톰의 가족들은 크리스의 교양 있는 말투와 행동에 호감을 갖게 되는데, 특히 톰의 아버지는 크리스와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를 좋아하게 되고, 톰의 여동생 클로에는 크리스의 당당한 모습에 반하게 된다. 결국 톰은 클로에와 결혼을 하고, 장인어른의 회사에 취직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하게 된다.
 
여기에 또 한명의 매력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톰의 약혼녀 노라는 미국에서 건너온 배우 지망생으로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톰의 가족들은 노라의 옷차림에서부터 행동, 말투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결국 톰은 노라와 헤어지고 다른 정숙한 여성과 결혼한다.
 
크리스와 노라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처지였다. 그런데 노라는 상류사회로의 진출에 실패했고, 크리스는 성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에 있다.
 
크리스는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한 교양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적당한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알았고, 자존심도 있었다. 그런데 노라는 달랐다. 노라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투는 항상 톰의 가족들에게 거슬렸고, 그녀의 솔직함은 항상 단점으로 작용했다. 즉, 크리스는 상류사회에 무난하게 섞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공했고, 노라는 상류사회에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오히려 상류사회의 질서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역시 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매치 포인트>의 크리스는『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비교할 수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살인행위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회의한다. 그러나 크리스는 자신의 결단과 행동에 조금의 죄의식도 갖지 않는다. 노라를 살인할 때 그가 흘렸던 땀과 눈물은 미안함보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윤리의식은 크리스의 삶을 결정짓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크리스의 악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크리스의 인생에서는 선한 행동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이 두 영화를 보기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면,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읽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매력적인 두 편의 영화를 보기 바란다. 물론『죄와 벌』을 미리 읽고서 말이다.


송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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