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외교관 출신 이경구의 『소렌토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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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내가 본 時事英語』, 『외교문서작성법』, 『영어書翰文작성법』, 『영문편지 쓰는 법』 등 4권의 전문서를 저술한 바 있기에 이번 출간이 출판 관련으로 첫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노령(1934년생)에도 불구하고 문학서(文學書)를 세상에 냄으로써 그의 또 다른 재능과 면모를 펼쳐내는 일이어서, 또 등단(1998년《한국수필》) 이래 10여 년 만에 갖는 상재여서 주위의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인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서 나가사키(長崎)로 끌려간 조선 포로들 중의 한 사람인 안토니오 코레아가 생각나서 쓴 것이다. 피렌체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가 남긴 항해 일지를 보면, 그는 나가사키의 노예 시장에서 조선 소년 5명을 샀다고 한다. 귀국 도중에 4명은 인도에 있는 고아에서 풀어주고 1명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카를레티는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이탈리아 처녀에게 장가갔을지도 모른다. 알비 마을은 남부 이탈리아에 있으며 코레아 씨의 집성촌이다. ― <쏘렌토 아리랑> 중에서
작가라면 작품세계가 자신의 직업과 깊은 연관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직업적 경험이 노골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필 장르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일상생활의 소소한 기록’ 또는 ‘신변잡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 속에 든 이경구 수필가의 작품들은 자신의 직무경험(외교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쇠똥구리는 ‘똥을 빚는 예술가’, ‘지구를 굴리는 벌레’, ‘알의 썩음을 예방하는 과학자’, ‘따뜻한 모정을 지녔다’, ‘죽음이 아름답다’고 쓴 시와 산문이 문학 작품에 많다. 이런 글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쇠똥구리는 우리들의 벗이자 교사이고 모성애의 전범(典範)이며 환경 미화원이 아닌가. 이러한 익충(益蟲)이 지금은 쇠똥이 귀해져서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 <쇠똥구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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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망초를 처음 목격한 것은 지난겨울 어느 추운 날의 일이었다. 아침나절에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눈을 쓸기 위해 방문을 열고 옥상 정원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망초가 장독 앞에서 눈발을 맞고 있었다. 상추를 기르는 화분에 난데없는 망초가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겨울을 한데서 나고 있는 푸르죽죽한 자태가 대견해 보였다. ― <망초를 기르며> 중에서
이경구 수필가는 책 머리글에 부친 <작가의 말>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와 “죽음이 네 문전을 찾는 날 / 너는 무엇을 내보일 수 있겠는가. // 오오, 나는 내 생명 가득 찬 잔을 / 그 손님에게 드리리라. /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으리 (―r.타고르/김양식 역, 「기탄잘리」에서)” 등 두 편의 시를 열거하면서, “나의 수필 쓰기와 이 책에 쏟은 열정은 위의 시구와 같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심중에 든 강한 문학적 여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책 말미에 부친 <후기(後記)>에서도, “수필을 쓰게 된 동기는 ‘시흥이 돋는 심경이면 늙지 않는다[詩心不老]’는 말도 있듯이 저는 글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분명한 주관과 목적성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이경구 수필가는 그의 작품 한 편 한 편에서 팩트(fact)와 감흥(感興)의 메시지로 독자와 교감을 시도한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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