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가 말하는 삶의 리얼리티
츠지 히토나리가 말하는 삶의 리얼리티
  • 독서신문
  • 승인 2009.05.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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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부터 듣는 日 유명 작가의 작품세계 ④
번역가 양억관, 츠지 히토나리를 말하다
 국내 최대 책 잔치라 불리는 ‘서울 국제 도서전’이 이달 13일부터 열렸다. 지난해 중국에 이어 일본이 주빈국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요시다 슈이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온다 리쿠 등 인기 일본 작가들이 내한해 더욱 흥미를 끌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유명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들로부터 그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인터뷰를 4회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註)
 

▲ 번역간 양억관 씨     ©독서신문

 
10년 전『냉정과 열정 사이』가 출간됐을 때 츠지 히토나리는 자신 특유의 필치와 감수성있는 문체로 많은 여성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보통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을 보며 ‘감각적인 문체를 구사한다’고 표현하곤 한다. 참 주관적이다. ‘감각적’이라는 단어는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해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린다’, ‘사물에서 받는 인상적인 느낌을 받다’ 등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그를 수식하는 ‘감각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나름일 것 같다. ‘무감각하다’는 것은 죽은 것을 의미한다. 신경세포가 죽으면 감각을 느낄 수 없고 미각이 죽으면 맛을 느낄 수 없다. 시각이 죽으면 사물을 볼 수 없고 감정이 죽으면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반대로 아픔도. 죽은 이는 말이 없는 것과 같이 죽은 것은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감각과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감각이란 것으로 그가 수식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들은 그의 소설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게다. 그것이 아픔이든 기쁨이든, 혹은 절망이든 희망이든. 이 모든 삶 전체를 아우르는 소설. 츠지 히토나리는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도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에쿠니 가오리와『냉정과 열정 사이』를 공동집필하면서 그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후에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공지영과『사랑후에 오는 것들』을 집필해 또 한 번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냉정과 열정 사이』를 출간하지 10년 만에 새로운 소설로 팬들을 다시 찾았다. 신간인『좌안 우안』을 통해 많은 팬들을 찾은 것이다.『냉정과 열정 사이』가 출간된 지 10년을 맞아 발간된 이번 작품은, 우선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는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성장한다. 몸만 성장하는 것이 아닌 내면까지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이러한 소설집필 방식은 우리네 삶과 참으로 닮아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한국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양억관 씨의 손을 거쳐『좌안 우안』도 한국에 출간됐다. 양억관 씨는 일본어 전문번역가로서 이미 국내에서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독자들은 그의 번역본을 읽고 나서 “원본의 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표현하는 번역가”,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원작자를 충분 이상으로 돕는 번역가”라고 그를 표현하곤 한다. ‘일본문학 번역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그인 만큼 굵직굵직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번역한 양억관이 오른쪽 눈, 우안으로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츠지 히토나리가 인생을 즐겁게 살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양억관은 작품을 통해 그 작가를 파악하며 연장선을 그어 글쓴이의 인생관까지도 추이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원작에 가까운 번역본을 내놓는 번역가’라는 평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그가,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우안』을 이야기한다.
 

▲ 번역간 양억관 씨     ©독서신문

 

- 작가가『우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나요

인간에 대한 한없는 긍정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고난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긍정을 말하고 있죠. 왜 고난이었냐 하면 주인공 ‘큐’는 전생의 업을 타고났고 그 업을 해소해야 하는 운명이거든요. 부모는 야쿠자에 소이치로의 자살에서 큰 충격도 느끼고 거대한 페니스 때문에 마리와 처음 관계를 가질 때도 실패하고….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방황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긍정을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가는 인간은 전생과 현생과 내생 모든 것에 인적인 관계성으로 연결됐다는 전제를 두고 있어요. 이 땅에 사는 그 많은 인물들 중 큐라는 인물 하나를 내세워서 현생에 대한 커다란 긍정을 하는 셈인 거죠. 그래서 저는 ‘츠지 히토나리가 현실을 즐기며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 인터뷰 전에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어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 표현 못한 것 같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작가가 이 작품의 구상 자체를 나름대로 방대하고 대단하게 했어요. 그런데 작품 전개라는 것이 사람의 인생처럼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자체가 삶의 리얼리티와 닮았다는 거죠.
 
 
-『좌안 우안』이『냉정과 열정 사이』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면요

우선 길이가 다르죠. (웃음) 그리고『냉정과 열정 사이』는 밝잖아요. 발랄하게 현생을 구가하고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리면서 남자가 마지막엔 여자를 쫓아가기도 하고. 우선 밝은 분위기의『냉정과 열정 사이』와는 작품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냉정과 열정 사이』와『좌안 우안』같은 형식의 소설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처음『냉정과 열정 사이』가 나왔을 때는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이슈를 일으켰지만 이젠 이런 공동집필 형식의 소설은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하면서 느끼고, 또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 ‘번역의 독서다’라는 거예요. 독서의 형식중 하나가 번역이라는 의미인데 즉, 번역하기 위한 독서를 말하는 거죠. 보통의 독서는 그냥 그 소설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며 스토리를 따라가지만 번역의 독서는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죠. ‘이걸 우리말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하고 의식하면서 독서를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마치 글 쓰는 사람의 내면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작가의 의식의 궤적이 느껴져요. 그런 걸로 봤을 때 두 사람이 어떤 프로젝트를 세워서 방향을 설정하고 캐릭터 만들어내는 부분에 있어 제약이 따르게 되죠. 즉, 남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 내는 셈이죠.

둘이 함께 소설을 쓴다는 기획 자체가 혼자서 쓰는 작품과는 또 다른 제약이 운명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처럼 두 사람이 함께 집필하는 작업방식 자체가 인간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에게 아내가 있고 애인이 있고 형제가 있을수록 삶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마치 이것처럼 소설의 공동집필 형식을 시도하는 자체가 인간의 삶이라는 리얼리티를, 아주 치열한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거죠. 그런 점에서 괜찮은 시도 같아요. 연애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처럼 공동집필도 한 작가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니라 두 작가가 관계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애라는, 크게 봐서는 삶이라는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공동집필 형식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형식으로 소설을 집필하면 자기 마음대로 내용을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없고 상대에 의해 작품 방향이 바뀌기도 하죠. 저는 이러한 것들이 마치 인간의 관계적인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길가에 노숙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것도 하나의 삶이잖아요? 그것도 하나의 가치로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삶이 있고 그것은 모두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그런 식으로 평가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존재하는 것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봐요. 이렇게 시도해서 독자들에게 별 평가 못 받는다 해도, 그것 자체가 인생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러한 공동집필의 형식 자체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긍정적인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소설 말미에 가면 카르마에 가득 찬 일상을, 괴로운 일상을 모두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결말로 가고 있는데 그러한 마무리도 공동집필 형식과 맞다고 생각해요. ‘중력의 카르마’란 세상을 살면서 자기혼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같이 매이게 되고 혹은 인간관계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어떤 제약을 의미하죠.
 
 
▲ 번역간 양억관 씨     ©독서신문

 
- 츠지 히토나리는 에쿠니 가오리, 공지영의 보조 작가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츠지 히토나리는 에쿠니 가오리와 공지영, 두 작가와 각각 공동집필을 했잖아요? 이 부분에서 저는 츠지 히토나리를 중심으로 공동집필 소설이 전개되고 있다고 봐요. 여 작가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츠지 히토나리와 공동집필을 각각 한 번씩 했지만 (물론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는 이번 신간을 통해 두 번째로 함께 작업하는 것이지만) 츠지 히토나리 입장에서 보면 두 여 작가들과 총 두 번의 집필 작업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츠지 히토나리가 보조 작가가 아닌 오히려 주도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 이 소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이 있으시다면요

큐가 프랑스에 있을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식당 주인이 큐가 대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유혹해요. 한번만 관계를 갖자고 그 여자가 요구하는데 큐가 거기에 응해줘요. 그런데 거기서 그 관계를 응해주는 큐의 심리가 묘하더군요. 생각해보세요. 큐는 관계를 가집을로써 돈을 받는것도 아니고 즐기는 것도 아닌데 응해줘요. 참 묘하지 않아요? 그건 마치 작가가 큐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모두에게 있는 한 내면을 표현한 것 같았어요. 특히 이 소설에는 성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와요. 소제목을 제가 붙였는데 「숟가락 휘는 소년」이라는 소제목을 처음에는「교미의 발견」이라고 썼었어요. 그런데 담당 편집자가 웃으면서 민망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교미의 발견」이라고 했냐면 큐가 자기 성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큐가 처음에 가출해서 방황하는 원인이 자기아버지의 밑에서 있던 사람이 자기 엄마와 벽장에서 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격하기 때문이에요. 큐의 엄마는 아주 미인인데 집의 벽장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미 두 사람이 얽혔 있었던 거죠. 거기서 충격 받고 집을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의 동호회원인 곤충채집하는 아마추어를 찾아가죠. 그리고 큐의 집에 연락을 해줘요. ‘큐가 여기 왔다’하고요. 그러면서 큐가 왜 집을 나왔는지 알게 되고 곤충채집하는 할아버지가 곤충 잡는 법도 알려주면서 “모든 자연은 교미를 한다”고 말해줘요. “교미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요. 그렇게 성에 대해 알아가고 깨닫게 되죠. 이건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중력의 세계를 의미 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삶이 성관계 없인 안 되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큐가 깨달아 가는 거죠. 연애라든지 가족이라든지 모두 성관계를 통해서 도출되는 거잖아요. 우리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작가는 그걸 첫 부분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레스토랑 여주인과의 관계도 그러한 것과 관련돼 있다고 할 수 있죠. 여러 파트별로, 여러 부분으로 소설이 구성되지만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성적인 욕구’와 ‘원초적 본능’, ‘카르마의 출발점’이자 ‘중력세계의 기본’, 전체적으로 이런 구성이기 때문에 작가가 거기에 집중 한 것 같아요.
 
 
-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글쎄요, 독자들은 다양하니까 그만큼 다양한 것들을 각자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요.
 
 
- 타 작가에 비해 츠지 히토나리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설정자체를 비극적인 인물로 해놨어요.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비극적인 인물이죠. 그리고 주인공은 해방될 수 없는 중력의 세계에 살고 있죠. 그런데 이 큐라는 인물은 초능력을 가지고 영적인 세계와 소통해요. 영적인 세계는 신이든 영이든 순간 이동 할 수 있잖아요. 없어지고 사라지는 등 시공을 초월하며 중력이 없는 세계를 살죠. 큐가 중력이 있는 세상에서 많은 업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공중으로 떠오르고 숟가락을 휘는 것(주인공은 숟가락을 휘는 능력을 갖고 있다)은 중력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능력이 자기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요. 즉 카르마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이렇게 살다보니 벌써 8명을 구원했다고 말을 듣는데 이것은 평범한 삶과 일상의 생활, 이 세상에서의 인간관계 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큐같은 경우는 초능력을 잃고 중력의 세계 속에, 카르마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각오를 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행복을 느껴요. 그것은 마치 츠지의 인간관이랄까요, 삶에 대한 생각과 근본적으로 통하지 않나 싶어요.
 
<글/ 사진 : 황정은 기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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